작고 시인의 시

이관일_좋은 시는 무게와 깊이가 있어/ 물질고아원 : 성찬경

검지 정숙자 2018. 2. 21. 01:56

 

 

    물질고아원

 

    성찬경(1930-2013, 83세)

 

 

  우리집  마당에는

  갖가지 물질들이 모여

  편히 쉬고 있다

  나와 그것들은

  이제 한 가족이다.

  길에 버려진

  물질고아들이 측은해 보여

  하나씩 둘씩 데려온 것들이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마구 데려오는 것은 아니다.

  나의 감정과

  그것들의 생김새와

  궁합이 잘 맞아야 한다.

  묘한 곡선.

  경직한 직선.

  의젓한 무개.

  천진한 표정.

  한 때 시계였던 것

  기타였던 것

  삼륜차였던 것

  승용차 백미러였던 것.

  깨진 헬멧.

  파이프.

  유리 조각.

  쇠뭉치.

  아무래도 내 기질 따라

  광물성 물질이 많은 편이다.

  지금은 그냥 그것들 자체.

  내가 사랑하는 <오브제> 족이다.

  아침저녁으로 그것들에게

  다정한 시선을 보내면

  그것들 역시 다정한 시선으로 맞으며

  진심으로 나를 따른다.

  나의 애정은

  시간을 타지 않는

  이해를 넘어서는

  절대 애정

  담담하기 물 같고

  신의는 쇠

  나에 대한 저것들의 애정 역시

  변덕 없는 침묵의 무기질 애정

  행복한 행복한 물질 고아원.

  나는 이 고아원의 원장이다.

  이 물질고아원에서만은

  물권이 유린을 당하는 일이 없다

  세상의 모든 쓰레기 고아들을 다 구제해주고 싶지만

  내 능력으로

  그것은 몽상이다.

  사랑은 공간을

  고무줄처럼 늘어나게 하지만

  그것은 몽상이다

  우리집 마당은

  벌써 너무 초만원이다.

  나는 나와 인연이 닿은 물질고아들을

  돌보는 수밖엔 없다.

    -전문-

 

  ▶ 좋은 시는 무게와 깊이가 있어_ 이관일(시인)

  성찬경 시인은 개성 있는 표현을 추구하며 시의 형식뿐만 아니라 운율에 있어서도 새로운 시도를 해 운문과 산문의 중간 정도인 '우주율宇宙律'이라는 리듬도 만들어냈다. 또한 시각과 청각 등 다섯 가지 감각에 상응하는 것을 시의 본질로 삼는 '오관연습五官練習'을 주장했다. 그리고 "시 역시 음악과 마찬가지로 발성기관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시가 어떻게 소리를 내는지 집중하고 싶었어요. 시에도 사운드 차원에서 말할 수 있는 리듬이 있어요. 그걸 살리고 싶었죠."라며 끊임없이 새로운 시상詩想을 찾아냈다./ "우리 시단의 시가 주로 여성적이고, 식물성인 데 비해 내 시는 남성적이고 광물성이기에 시단에서 순순히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요소들이 섞여 있었을 것"이라고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히면서, 50년 간 시를 써왔지만 자신에게 시란 여전히 "목숨의 피와 땀을, 그리고 심로心勞의 제물을 먹으며 자라는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생전에 지인들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성찬경의 반투명 인생노트 마음이 가난한 사람』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 '박해를 받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약자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역설적으로 사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는 바로 이런 약자들이다. 가만히 보면 기세 좋게 강자처럼 세상을 치고 나가는 사람은 그러한 위세가 오래 지속되질 못한다. 때가 되면 부러지고 거꾸러져서 퇴장하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강자의 철학은 참된 의미에서 사려 깊은 생각도 아니며 진리의 편도 아니다. 반면에 굴욕을 참아가며 인내하는 약자는 끝까지 살아남아 햇빛을 본다. 진리가 약자의 편에 있기 때문이다"라며 자신의 작품 배경을 밝혔다./ 이어 "인생과 마찬가지로 시를 쓰는 일 역시 공짜가 없고, 속임수도 통하지 않습니다. 좋은 시는 무게와 깊이가 있으면서도 읽을 때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야 합니다. 현상에 혹하지 않고 차분하게 사물을 들여다보는 태도가 요즘 젋은 시인들에겐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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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e』2018-2월호 <memories>에서

  * 이관일/ 시인, 본지 편집스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