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천 년 은행나무 슬하에서/ 박서영

검지 정숙자 2018. 2. 22. 23:32

 

 

    천 년 은행나무 슬하에서

 

    박서영(1968-2018, 50세)

 

 

  저것은 몸에서 울음 다 발라내고

  은행나무 금관을 쓴 채 발견된 사랑의 배후

  속이 텅 빈 황금빛 껍데기 속에 누가 손을 넣어보았나

  안간힘으로 나무둥치에 붙어있는 사랑의 배후들

 

  땅바닥에 떨어져 배 뒤집고 죽어있는 건

  다 울고 자신을 버린 매미

  얼마나 한스럽게 울다 생을 건너갔는지

  죽어서까지 짓밟힐까 싶어

  나무뿌리 쪽으로 슬며시 옮겨주었다

 

  울음의 긴 설화를 받아 적고 있는 은행나무 잎사귀

  아무리 손 흔들어도 이별할 수 없어

  천 년이 지나면 끝날 것 같지?

  아무래도 우리와 황금빛 허물은 은행나무에 업혀

  천 년을 더 살아낼 수 있을 것만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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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태산은행나무를사랑하는사람들『천태산 은행나무 읽는 법』에서/ 2017.10.1.<詩와에세이>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