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이관일_'투사'였지만 마음이 따뜻했던...(발췌)/ 느릅나무에게 : 김규동

검지 정숙자 2018. 2. 20. 01:33

 

 

    느릅나무에게

 

    김규동(1925-2011, 86세)

 

 

  나무

  너 느릅나무

  50년 전 나와 작별한 나무

  지금도 우물가 그 자리에 서서

  늘어진 머리채 흔들고 있느냐

  아름드리로 자라

  희멀건 하늘 떠받들고 있느냐

  8·15때 소련병정 녀석이 따발총 안은 채

  네 그늘 밑에 누워

  낮잠 달게 자던 나무

  우리 집 가족사와 고향 소식을

  너만큼 잘 알고 있는 존재는

  이제 아무 데도 없다

  그래 맞아

  너의 기억력은 백과사전이지

  어린 시절 동무들은 어찌 되었나

  산목숨보다 죽은 목숨 더 많을

  세찬 세월 이야기

  하나도 빼지 말고 들려다오

  죽기 전에 못 가면

  죽어서 날아가마

  나무야

  옛날처럼

  조용조용 지나간 날들의

  가슴 울렁이는 이야기를

  들려다오

  나무, 나의 느릅나무

  -전문-

 

  '투사'였지만 마음이 따뜻했던/시대의 선비 같았던시인(발췌)_이관일(시인)

  김규동 시인은 1950년과 1960년 초기에는 전쟁 관련 소재와 도시문명에 대한 비판의식, 현실의 비판적 추구 등을 지향하는 모더니즘 경향의 시를 많이 발표한다. 「포대가 읶는 풍경」「어느 병상의 연대」같은 작품에서 이런 경향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했듯이 1970년대 이후에는, 폭압적 군사독재정권에 대항하거나 통일문제, 노사문제, 학생시위 등 정치적이며 현실적인 문제를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발간한 시집 『죽음 속의 영웅』(1977), 『깨끗한 희망』(1985), 『오늘 밤 기러기떼는』(1989) 등이 그 사실을 작품으로 말하고 있다./ 어머니와 고향을 그렇게도 그리워했던 김규동 시인은 2011년 9월 향년 86세로 이 세상을 떠났다. 문인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에서 문학평론가 백낙청은 "후배들이 시집을 보내주면 정성스럽게 손수 답장을 써서 보내는 등 많은 후배들을 정말 사랑한 시인이었다"며 "교양도 풍부하고 세계문학에 대한 지식도 많았으며 무엇보다도 문학인으로서, 시인으로서 자긍심이 컸던 시인입니다. 또한 책임감도 대단하셔서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기셨다"고 했다. 이근배 시인은 "형벌의 한 시대를 시의 몸으로 불사른 문곡 선생"이라는 표현으로 시인을 그리워하며, 이어 "정도와 정신을 지키는 이 시대의 선비 같은 분인 김규동 시인은 분단과 이데올로기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가장 치열하게 살아온 분"이라며 시인을 추모했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변론 과정에서 '막말 논란'으로 문제가 되었던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인 김평우 변호사에 대해 현직 변협 회장인 김현 변호사가 징계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는데, 김평우 변호사는 김동리의 아들이고 김현 변호사는 김규동 시인의 아들이라는 점이다. "제가 김규동 시인의 잡지사에서 일할 때, 그 집안에서는 TV는 물론 라디오도 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고3 아들 때문이었는데, 그 고3 학생이 바로 김현 변호사가 되었습니다"고 민윤기 시인이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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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e』2017-9월호 <memories>에서

  * 이관일/ 시인, 본지 편집스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