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이유식_아웃사이더적 인간상(발췌)/ 참회록 : 윤동주

검지 정숙자 2018. 2. 25. 15:22

 

 

    悔錄

 

    윤동주(1917-1945, 28세)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王朝의 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滿二十四年 一個月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懺悔錄을 써야 한다

         그때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전문, 1942. 1. 24.-

 

   ▶ 아웃사이더적 인간상(발췌)_ 이유식

 「自畵像」에서 윤동주는 '우물'을 통하여 자기를 보았다. 그리하여 이러한 <나르시스의 평면>이 「懺悔錄」에 이르러선 마치 李箱의 평면처럼 '거울'로서 나타난다. 그리고 여기서도 「自畵像」의 경우처럼 일종의 자기 학대와 자기연민이 표출되고 있다. "어느 王朝의 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이것은 일종의 자기학대다. 그러나 자기를 영원히 학대하고 증오하고 저주할 수 없었으므로 미워져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졌듯이 욕된 자기 얼굴이 나타났던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을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고 했다. 이것은 자기연민의 상태다. 이와 같이 윤동주는 언제나 <나르시스의 평면>을 통하여 자기학대와 자기연민을 발견하고 있었다. "무슨 기쁨 바라 살아왔던가"고 한 그는 자신의 숙명을 전술된 바와 같이 슬퍼했고 저주했으며 증오했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를 영원히 저주하고 학대할 순 없었다. 저주와 증오 속에서도 마치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시를 써야만 했듯이 자기를 주장하고 자기를 발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그의 정신적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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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비평』2017-제25집 <탄생 100주년 작고 문인 특집>에서

  * 이유식/ 196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평론집 『반세기 한국문학의 조망』외, 수필집『새로운 장르 새로운 수필의 향연』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