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매창공원/ 최승범(시) 조석창(글)

검지 정숙자 2018. 1. 5. 01:07

 

   

    매창공원에서

 

     최승범(시) / 조석창(글)

 

  1.

  공원 안 들어서자

  떠오르는 이야기 

  북에는 황진이

  남에는 매창

  조선조

  중기로부터

  전해 오던

  말이었지

 

  2.

  스승 가람께선

  <매창뜸> 강의에는

  시와 거문고에 능한

  명기일 뿐 아니라

  유희경의

  정인이었다는

  말씀도

  하셨다

 

  3.

  석정 선생과는

  옹서간인 관계로

  한시 <매창집>의

  대역본을 내실 때

  교정 일

  도와드리며

  살펴보군

  하였지

 

  4.

  매창공원 둘러보고

  돌아나오는 길은

  이화우 흩날리는

  어린봄 아닌

  늦가을

  해질녘의 스산한

  잎지는

  소리

  -전문-

 

  * 블로그주 : 한글맞춤법과 띄어쓰기, 원문에 따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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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중기 황해도 개성에 황진이가 있다면 전북 부안엔 이매창이 있었다.이들은 시조와 한시, 가무와 거문고 등에 능해 조선 명기의 쌍벽을 이뤘다. 이매창은 작품집 '매창집'을 통해 시조와 한시 58수를 남겼고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던 유희경과 나눈 사랑 이야기도 가슴 절절하게 전해온다. 또 당대 최고의 문호였던 허균과도 깊은 교분을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부안이 아전이었던 아버지를 둔 매창은 1573년에 태어났지만 아버지가 돌아간 후 기생신분이 됐다고 전해진다. 1610년 세상을 떠났으니 37세란 길지 않은 생을 산 셈이다. 그가 죽은 후 수십 년 뒤에 부안 사람들의 매창을 기리는 묘비를 세웠고, 매창이뜸라 불리는 공동묘역은 현재 매창공원으로 다시 태어나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매창공원은 아담한 규모다. 매창공원을 알리는 커다란 기념석을 뒤로 한 채 한 바퀴 둘러보면 매창의 시가 적힌 돌들이 여기저기 서 있다. 한 수 한 수 곱씹으며 걷다보면 어느새 매창의 묘에 다다른다. 아담한 규모다. 생전 보여줬던 매창의 화

려한 몸동작과 고어 시 한 수에 비하면 오히려 소박한 형태다. 시대를 달리 세웠던 비석만이 매창의 묘임을 알리고 있을 뿐이다.

 

  이화우 흩날릴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매창의 대표적 시 '이화우'다. 임진왜란으로 헤어진 정인 유희경을 그리워하면서 쓴 시다. 당시로선 대접받지 못한 기생의 신분이었지만 단 한 사람의 정인만을 그리워하며 생을 마감했을 때 매창의 아픈 가슴을 느낄 것 같다. 북쪽을 향한 그녀의 눈빛과 그녀의 볼을 타고 지나갔을 부안의 한 줄기 바람은 수백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예전 그대로다.

  매창을 이야기할 때엔 부안 개암사를 빼놓을 수 없다. 매창은 생전에 이 절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지금이야 자동차로 몇 분 거리지만 그 옛날에 이곳을 찾기 위해선 지극한 정성이 필요했을 게다. 개암사 '매창집' 목판본을 발행한 사찰이다. 하지만 당시 목판본은 모두 불에 타 버렸고, 단 두 권만이 전해진다. 현재 간송미술관하버드대 도서관에 보관돼 있다고 한다.

  이곳을 자주 찾은 이유는 아마 정인 유희경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 것으로 알려진다. 밀회를 즐겼던 곳이 인근 내소사였고, 애타게 그리워했던 곳이 개암사인 셈이다.

  시인 신석정은 그를 부안삼절이라 불렀다. 황진이는 스스로 자신을 송도삼절이라 했지만 매창은 죽은 지 300년이 흘러 후손들에 의해 명명됐다.

  타고난 재능을 불태우지 못한 채 신분에 묶여 한 남자의 사랑까지도 얻지 못한 매창의 마음이 아직까지도 이 곳 부안 매창공원에 남아 있는 듯하다. (조석창(글)/ 전북중앙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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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향의 고장 전북『전라박물지全羅博物誌에서/ 2017. 11. 30. <시간의 물레>펴냄

  * 최승범/ 전북 남원 출생, 시인, 문학박사, 1958년 『현대문학』으로 시조부문 등단, 시집『난 앞에서』『가랑잎으로 눈 가리고』등, 일본어역 시집 『자연의 독백』등, 전북대 명예교수, 고하문학관 관장, 가람시조문학상 등 다수 수상

  * 조석창/ 중앙대 신문방송 졸업, 전북대 신문방송 대학원 수료, 현재 전북중앙신문 문화부 근무, 2015 전북 기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