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시집 · 열매보다 강한 잎

파야 할 땅은 시간이다/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0. 9. 23. 01:09

 

 

    파야 할 땅은 시간이다

 

     정숙자

 

                                        

  속도보다 각도를 근심한다

  빠르지만, 새들의 하늘엔 역사가 없다

  그저 빠르기만 한 속도로는 새로운 흐름을 열지 못한다

  한 눈금일지라도 미래를 바꿔야 나는(飛) 것이다

  밤 깊어 귀 기울이면 미세한 소리가 반짝거린다

  표면에서 부푼 마찰음과는 다르다

  어디선가 미증유의 공간을 가꾸는 보습일 게다

  밤이나 낮이나 호흡을 빛내는 혈관, 혈관들

  냉이 씀바귀를 다듬고, 기역니은을 저울질하고, 남몰래

눈물 삭이는 일도 내일을 조각하는 바큇살이다

  사유하는 관절은 깃털을 추월한다

  어느 하루 소용돌이 빼먹지 않는 바람 속에서 시간은 무

한대로 풀리는 대지

  태양, 물, 공기, 자유 또한 넉넉하다

  타인을 견주지 마라

  애오라지 자신의 왼발과 오른발을 경주하라

  그리고 느긋하라, ―좀더 단단한 진화를 위해 때로는 실

족마저도 허용하라

  남은 곳이라곤 시간뿐이다

  시시각각 시간 밖으로 달아나는 시간이지만

  만인에게 고루 놓인 땅, ―그 비옥한 틈을 뒤져라

  누군가 파낸 흙이 산마루에 하얗게 피어오른다

     -애지2003. 겨울호

 

     -------------

  * 시집『열매보다 강한 잎』에서/ 2006.9.25.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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