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시집 · 열매보다 강한 잎

물은 한 방울로 태어난다/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0. 9. 23. 00:38

 

 

    물은 한 방울로 태어난다

 

     정숙자



  한 방울의 물은 물의 씨앗이다                                

  떨어지는 순간 껍질을 깨고 다른 물방울의 손을 잡는다

  떠나는 발자국 소리가 난다

  눈 뜰 겨를도 없이 숨진 물방울에게, 더는 크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물방울에게 까닭을 물어서는 안 된다

  심어진 처음 자리가 이미 많은 얘기다

  자라는 건 꿈이 아니다

  걷고, 달리고 소용돌이쳐야만 한다

  걷고, 달리고 소용돌이칠 행운을 입어야 한다            

  도랑을 지나 시내를 지나 청푸른 강물일 때도 오체투지

~ 오체투지~ 숱한 바람을 재워야 한다

  그러나 보아라

  눈… 비… 이슬…

  어느 시간을 돌아온 물도 마지막 길에는 눈이 부시다

  한 생애를 충실히 마친 한 방울 한 방울 물방울들이 깃털

을 가다듬는다

  바다는 물들의 공동묘지다

  여기 이 별에 태어남보다 더한 추락은 없었노라고, 그래

서 삶이 조금은 즐거울 수 있었노라고

  바다가 날아오른다 파도가 한껏 날개를 편다                      

  먼저 돌아간 물방울들이, 또 태어날 물방울들이 하늘 가

득 햇볕을 쬔다 
     -현대시2003. 8월호

 

    -------------

  * 시집『열매보다 강한 잎』에서/ 2006.9.25.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제7시집 · 열매보다 강한 잎'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야 할 땅은 시간이다/ 정숙자   (0) 2010.09.23
날짜변경선/ 정숙자  (0) 2010.09.23
새해, 새벽/ 정숙자  (0) 2010.09.22
문인목/ 정숙자  (0) 2010.09.22
그러므로 강물도/ 정숙자  (0) 2010.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