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새벽
정숙자
새로 세 시 반이 새로 세 시 반을 지나고 있다. 새로 세 시
반은 새로 세 시 반 외에 다른 시간을 지나지 못한다. 새로
세 시 반은 나의 삶이다. 내 흉부를 떼어 벽에 건다면 각종
사유와 희로애락이 시간 단위로, 분 단위로, 초 단위로 원을
그리며 돌 것이다. 묵은 발자국 반복해 밟으며 남은 나이를
먹을 것이다. 나이가 는다는 것, 그게 얼마나 찡한 안도이
냐. 새로 세 시 반은 다만 새로 세 시 반일 뿐 나이가 없다.
새로 세 시 반은 늙을 수도, 눈감을 수도 없다. 직각으로 선
새로 세 시 반은 여태도 흔들리는 나의 청춘, 노란빛을 숨긴
파란 은행잎이다. 새로 세 시 반은 정확히 새로 세 시 반만
을 스친다. 내 삶 또한 나만의 위도를 관통해 나가고 있는
중일까. 어떻든 걱정 없다. 그늘 긴 이 생애도 <짹․깍> 사
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 찰나 위로 새로운 삶들이 오고, 오
고, 또 지나갈 것이다. 창문이 하얗게 돌아온다.
-『애지』 2001.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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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열매보다 강한 잎』에서/ 2006.9.25.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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