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시집 · 열매보다 강한 잎

새해, 새벽/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0. 9. 22. 02:07

 

 

    새해, 새벽

 

    정숙자

                                                       


   새로 세 시 반이 새로 세 시 반을 지나고 있다. 새로 세 시

반은 새로 세 시 반 외에 다른 시간을 지나지 못한다. 새로

세 시 반은 나의 삶이다. 내 흉부를 떼어 벽에 건다면 각종

사유와 희로애락이 시간 단위로, 분 단위로, 초 단위로 원을

그리며 돌 것이다. 묵은 발자국 반복해 밟으며 남은 나이를

먹을 것이다. 나이가 는다는 것, 그게 얼마나 찡한 안도이

냐. 새로 세 시 반은 다만 새로 세 시 반일 뿐 나이가 없다.

새로 세 시 반은 늙을 수도, 눈감을 수도 없다. 직각으로 선

새로 세 시 반은 여태도 흔들리는 나의 청춘, 노란빛을 숨긴

파란 은행잎이다. 새로 세 시 반은 정확히 새로 세 시 반만

을 스친다. 내 삶 또한 나만의 위도를 관통해 나가고 있는

중일까. 어떻든 걱정 없다. 그늘 긴 이 생애도 <짹․깍> 사

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 찰나 위로 새로운 삶들이 오고, 오

고, 또 지나갈 것이다. 창문이 하얗게 돌아온다.

    -애지 2001.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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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열매보다 강한 잎』에서/ 2006.9.25.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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