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변경선
정숙자
떨어진 동백꽃은 곧바로 깊은 잠이다
고른 숨소리가 섬세한 파도들을 뭍으로 해안으로 밀어
보낸다
그 시름없는 주름살 사이, 평화는
무게를 갖지 않는 공기였던가
수십 년 배웅한 얼굴
한 치 앞이 안 보여 퍼덕인 얼굴
삶을 일으키려고 뒷골목 드나든 얼굴
노도(怒濤)와 겨루던 그 호흡들이 태아 적 잠으로 돌아가
있다
텅 빈 이 숙면이 정오보다도 붉은 절정일지 모른다
동백꽃 넘어간 수평선 위로 미풍이 드리운다
무엇도 아니다
수면은 시간 속에 무늬를 짜지 않는다
걸릴 것도 비울 것도 까르르 솟구칠 것도 없는 0시, 땅의
정화는 비로소 시작이다
둥글고 깨끗한 잠이 바람과 밤을 접는다
-『문학과창작』2002.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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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열매보다 강한 잎』에서/ 2006.9.25.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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