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풍속
정숙자
나무가 풀을 먹는 걸 보았다
너른 그늘 속에 자디잔 이빨을 숨기고 있는 걸 보았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 꽃밭 커다란 사과나무가 풀뿌리들을 씹는 소리가
났다
내 신발 문수가 더 커지지 않는 이유도 거기 있었다
휘영청 밝은 달은 얼마나 많은 근동의 별을 먹었을까
태양은 또 얼마나 많은 주변의 눈을 감기웠을까
키 훤칠한 밑둥들은 남의 목숨을 제 살에 붙인 뼈대들이
다
왜 그리해야 되는지 알지 못한다
그게 삶이라고 믿으며 나무는 나무대로 풀은 풀대로 주
어진 만큼 서 있다 간다
내 신발 문수도 밑으로는 미안하고 위로는 슬프다
일 센티가 자라면 이삼 센티 넓어지는 그늘 속에서 누군
가 발을 오므린다
군화 신은 남편을 따라 해안선을 따라 이사 다닐 때
바닷물이 시냇물들을 사정없이 마셔버리는 걸 보았다
그리고 아침이 그리로 오는 걸 보았다
이상하다, 그런데 그 모든 시간이 아름다웠다는 것이…
이런 공기를 만난 아침에 꽃밭의 풀을 맸다는 것이…
내 마음 한구석에 좀더 자라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것이…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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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열매보다 강한 잎』에서/ 2006.9.25.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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