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메니에게 보내는 편지(1871)
아르튀르 랭보(1854-1891, 37세)
"나는 감히 견자이어야 하며 의식적으로 견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겠습니
다. 시인은 모든 감각의 오랜, 엄청난 그리고 추리해낸 착란에 의해서 자신을
의식적으로 견자로 만듭니다. 사랑과 고통, 광증의 모든 형태들이 다 그런 것
입니다. 시인은 그 자신을 추구합니다. 자신 속에 모든 독소를 걸러내어 오직
그 정수(quintessences)만을 간직하려는 것입니다. 그의 모든 신앙과 초인적인
모든 그의 힘이 필요한 말할 수 없는 고역입니다. 거기에서 그는 가장 위대한
죄인 가운데 가장 위대한 범죄자, 가장 위대한 저주 받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즉 그래서 최상의 현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가 미지의 세계에 도
달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영혼을 단련해서 가꾸었기 때문입
니다. 이미 그 누구보다도 풍요로워진 영혼들!"
-이준오, 『아르튀르 랭보 타자성』, 푸른 사상사, 2008. 26쪽
▶ 지구란 별에서 영원히 추방되는 자들_ 전영규
그들의 방랑을 자진유배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자신의 모국에서조차 정착하지 못하고 방랑해야만 하는 시인들의 삶이다. 미지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시인들은 떠난다. 의식적으로 견자가 되어야 한다는 건, 시인으로서의 자의식을 지녀야 한다는 의미다. 내 몸속에 숨겨진 정수quintessences만을 발견하는 일. 오랜 방황과 고뇌를 통해 내 몸 안에 들어간 모든 독소를 걸러내고 난 후 발견한 정수야말로 시인의 언어다. 시詩라는 정수를 발견하기 위해 시인은 살아있는 동안 자발적인 유배를 감수해야만 하는 저주받은 죄인의 삶을 산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언제든 망명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 그러나 그들의 망명(혹은 방랑)이 단지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 서포나 추사처럼, 그들이 자발적인 유배를 감행할 수밖에 없는 당대의 사회 현실도 문제였다. 유배와도 다름없는 그들의 방랑을 찬양하는 시절인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영락없는 죄인이었다. 그들이 이루고자 했던 혁명은, 그들을 배척했던 자들에게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자들조차도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풍경일 수밖에 없다. 그들이 풍미하는 외로운 방랑의 여정이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세계를 이룬다. 사랑과 고통, 광증이라는 무수한 형태의 고뇌를 통해서라도 그들이 끊임없이 방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계가 우리가 살아있는 세계와 다르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앞으로 살아갈 우리의 세계를 이루기 위해 시인들은 한 발짝 먼저 떠난다. 그들은 불모지나 다름없는 곳에서 살고 싶어서 살지 않는 빈집을 마련해둔다. 언젠가 그곳에 머물 우리를 위해, 누구보다도 풍요로워질 존재의 영혼을 위해 그들은 또 한 번 먼 길을 떠난다./ 지구라는 별에서 영원히 유배되는 시인이라는 이방인들. 그들이 마련한 작은 영지嶺地에서 언젠가 만나는 날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들의 유배를 찬양하는 일이다. 다시 만나는 그날을 향해, 시인들의 외로운 유배가 찬양받는 시대가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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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학』 2017-겨울호 <이 계절의 시집>에서
* 전영규/ 2017년 《조선일보》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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