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시

이정식_불과 얼음의 길(발췌)/ 가지 않은 길 : 로버트 프로스트

검지 정숙자 2018. 1. 13. 02:06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 89세)

    옮긴이: 이정식李庭植/ 정치학자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습니다

  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서서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멀리 끝까지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 생각했지요

  풀이 무성하고 발길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그 길도 걷다 보면 지나간 자취가

  두 길을 거의 같도록 하겠지만요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놓여 있었고

  낙엽 위로는 아무런 발자국도 없었습니다

  아, 나는 한쪽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 놓았습니다!

  길이란 이어져 있어 계속 가야만 한다는 걸 알기에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거라 여기면서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고                                                             

   - 전문-

 

   ▶ 로버트 프로스트와의 만남 _ 이정식李庭植

  내가 이 글의 첫머리에로버트 프로스트의 시를 거론하게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오래전 프로스트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남다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다트머스대학교의 전임강사로 있을 때였다. 대학 근처에 살고 계시던 그 시인이 월요일 저녁에 4학년 졸업반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했는데, 어느 날 강의를 마친 후 20명 안팎의 교수들과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 그와 대화를 나눴다. 겨울이었고, 방 한쪽에 있는 벽난로에 장작불이 타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미국 동북쪽 뉴잉글랜드의 저녁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시인은 한 주일 동안 내가 가르치던 학생들과 세미나를 가졌고 나는 그 세미나를 진행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다른 강사들 세 명도 역시 나와 같은 역할이었다. 뉴햄프셔주의 하노버에 있었던 잊혀지지 않는, 지금도 벽난로의 온기가 느껴지는 듯한 따듯한 기억이다.

  세미나에서 무슨 얘기가 오고 갔는지 전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몇 가지 질문들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을 쓰시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불과 얼음Fire and Ice>을 쓰시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과연 어느 것이 맞습니까?"

  "세상은 정말 단테가 예언한 대로 불이나 얼음의 세상으로 끝난다고 생각하십니까?"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식을 위해 쓰셨던 시를 읽지 못하게 되었을 때 무척 당황하셨죠?"

  아마도 그 노 시인이 수천 번 들어왔던 질문들이었을 것이다. 대통령의 취임식에 시인이 초청되어 연단을 차지하게 된 것은 미국 역사상 유래가 없던 일이어서 프로스트는 당시 국민들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취임식이 야외에서 있었고, 그날의 햇빛이 흰 눈에 반사되어, 새로 쓴 원고 (<헌정사Dedication>)를 읽지 못한 프로스트가 평소에 기억하고 있던 자신의 시, <아낌없는 선물Gift Outright>을 암송했던 모습은 세기의 취임식 중에서도 명장면으로 꼽히는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그 토론의 내용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는 장작불 옆에서 우리를 부드럽게 응시하던 그날 저녁 노시인의 눈길을 기억한다. 그의 시선이 유독 나의 아내에게 여러 번 머물렀기 떄문이다. 아마도 스무 번은 쳐다보았을 것이다. 스물세 살짜리의 동양의 신부가 색동저고리에 아꽈색(초록과 바랑이 섞인 색)의 비단 치마를 입고 있는 것이 매력적이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치마에 수놓아진 공작의 화려한 자태가 그의 눈을 붙잡았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 다음 해인 1963년 정월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89세였는데 조금만 더 살아 있었더라면 세계의 문호 로버트 프로스트는 '동양의 미"에 대한 시를 썼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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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사상』2018-1월호 <새 연재|정치학자 이정식의 인문학적 자서전/ 불과 얼음의 길>에서 발췌함

  * 이정식李庭植/ 1931년 평남 안주 출생, UCLA 정치학과 졸업 후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 취득, 38년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정치학과 교수 · 연세대 용재 석좌교수 역임, 저서 『한국공산주의운동사』『해방후사』등 다수, 현재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 경희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