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보기에
사포(희랍, 기원전 630~570 추정)
내 보기에 저기 앉은 저 사내는 신들과
닮은 장부일세. 그는 너의 맞은편에
앉아 있고 너의 달콤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들으며,
너의 매혹적인 웃음에. 나의 심장은
가슴속에서 멈추어 버렸다.
너를 잠시 잠깐 바라보니, 나의 목소리는 막혀 버리고
나의 혀는 굳어 버리고, 가벼운
불꽃이 나의 살갗을 덮으며
나의 눈은 앞을 보지 못하고 윙윙 우는 소리가 귓가에 맴
돈다.
그리고 땀이 몸을 적시고, 전율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풀밭의 풀처럼
파랗게 질려 나는 죽은 사람이다. 나에게 그리 보인다.
▶ 호라티우스의 사포 시련 체계 수용(발췌)_ 김남우(정암학당 연구원)
여기에 옮겨 적은 제4연의 12행 이후에도 몇 행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 내용적으로 「내 보기에」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사랑의 감정을 신체적 반응, 긴장과 흥분, 전율과 마비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각적 자극에서 시작된 흥분으로 온몸이 굳어 버린다. '심장'은 멈추고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혀'마저 뜻대로 움직일 수 없다. 다음 순간, 피부의 촉각은 열기가 온몸에 퍼져 가는 것을 감지한다. 피부는 점점 더 붉게 밝아 온다.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눈에 들어오는 사물들은 온통 흐리다. 귀에는 환청이 들린다. 그리고 이어져, 온몸은 땀에 젖었으며 온몸으로 전율을 느낀다. 마지막 순간, 마비된 몸은 움직일 수 없고 붉은 열기를 띠던 피부는 파랗게 식어 간다./ 롱기누스는 이런 사랑의 열정을 보면서 이 단편이 사랑을 노래한 시라고 생각했다. 로마 시인 카툴루스의 번안도 사랑에 빠진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학자들은 이 단편이 혼인 잔치를 배경으로 한다고 해석한다(C. M. Bowra. Greek Lyric, Poetry, Oxford, 1936, p.125 이하.) 단편의 1-3행을 보면 소녀와 나란히 앉아 있는 '사내'가 눈에 들어오는데,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소녀를 신부로 맞이하는 신랑으로 추정된다. 그는 "신들과 닮은 장부"라는 전통적 칭송으로 수식된다. 사포는 혼기에 이른 소녀들의 교육을 담당하며 소녀 동아리의 수장이었다고 알려졌는바, 혼인 잔치를 치르는 소녀는 아마도 사포가 돌보고 교육한 소녀일 것이다. 이제 목적하던 바의 교육을 마치고 곁을 떠나게 된 소녀를 바라보며 시인은 소녀와 소년의 결합을 축하한다. 그리고 이어 사포는 소녀에 대한 사랑을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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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파란』 2017-여름호 <issue 1 리듬> 에서
* 김남우/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서양고전학 협동 과정에서 희랍 서정시를 공부하였고, 독일 마인츠에서 로마 서정시를 공부하였다./ 정암학당 연구원이며, 서울대학교와 철학아카데미에서 희랍어와 라틴어, 희랍문학과 라틴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마틴 호제의 『희랍 문학사』, 토머스 모어의『유토피아』,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몸젠의 로마사』(공역), 호라티우스 서정시집 『카르페디엠』과 『소박함의 지혜』등을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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