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시

고봉준_사물 상상력 시(발췌)/ 사물들에게 바치는 송가 : 파블로 네루다

검지 정숙자 2017. 10. 29. 21:26

 

 

     사물들에게 바치는 송가

 

     파블로 네루다

 

 

  모든

  사물들을

  나는 사랑한다.

  그것들이 정열적이거나

  달콤한 향내가 나기 때문이 아니라

  모르긴 해도

  이 대양은 당신의 것이며

  또한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단추들과

  바퀴들과

  조그마한

  잊혀진 보물들.

  부챗살 위에 달린

  깃털

  사랑은 그 만발한 꽃들을

  흩뿌린다.

  유리잔들, 나이프들, 가위들

  손잡이나 표면에

  누군가의 손가락이 스쳐간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망각의 깊이 속에

  잊혀진

  멀어져 간 손의 흔적.

    -전문-

 

   

   ▶ 사물 · 상상력 · 시(발췌)_ 고봉준/ 문학평론가

  '사물'이 단순한 도구나 소모품 이상일 수 있는 이유는 거기에 나/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가치가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가치는 '나/ 우리'에 의해서 부여되는 것이기도 하고, 때로는 발견되는 것이기도 하다. 엄밀히 말하면 둘 모두이고, 두 극단을 왕복하며 살아가는 것이 삶의 실상이다. 시인에게 '사물'의 의미는 "그것들이 정열적이거나/ 달콤한 향내가 나기 때문이 아니라", 즉 내적인 성질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당신의 것이며/ 또한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사물의 의미는 사물 자체의 성질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우리의 주관성에서 결정된다. 일찍이 니체가 형이상학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했던 주장     "사물들의 진정한 본질은 식별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는 기호들은 모두 존재하지 않는 것, 무에의 고유한 기호들이다."(『우상의 홯혼』)      이러한 의미결정의 매커니즘에 정확히 부합하는 듯하다. 사물의 가치/ 의미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 결정된다. 이때 의미부여의 주체는 인간이며, '의미'는 사물이 지닌 속성과 인간-주체의 경험이 마주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그렇지만 사물의 의미가 모두 인간의 의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며, 그것이 인간이 사물에 투사한 감정의 양에 비례하는 것만도 아니다. 인간과 사물의 관계는 그것보다 한층 복잡하고 섬세하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선물한 물건이나 소중한 인연의 상대가 보낸 편지 한 통에도 쉽게 마음이 움직인다. 우리는 현재의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면 종종 오래된 사진이나 물건을 만지작거리면서 좋았던 과거의 시간을 떠올리곤 한다. 뿐만 아니라 프루스트의 소설에 나오는 마들렌 과자나 세월호 사건으로 희생된 아이들의 유품처럼 우리의 의지를 무력화하면서 어떤 세계를 강제하는 사물들도 있다. 우리가 과거를 회상하거나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심정으로 사물을 만지는 행위를 사물과의 '대화'라고 말한다면,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싶은, 혹은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낯선 시간, 세계를 열어젖히는 사물과의 접촉은 '침입'이라고 말할 수 있다. 후자의 경우 '의미'의 발생을 주도하는 힘은 결코 우리에게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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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표현』2017-10월호 <기획 특집 / 사물과 상상력>에서

  * 고봉준/ 2000년 《서울신문》신춘문예 당선, 평론집『반대자의 윤리』『비인칭적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