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강물도
정숙자
1/X로 축척된 지구의(地球儀) 위를 걷는다. 온몸이 흔들
린다. 어느 한 군데 비탈이 아닌 곳 없다. 누구에게도 모서
리의 삶 안 주시려고 지구를 둥글게 만드신 하느님, 전체를
비탈로 깎으신 하느님. 호호(好好)… 품위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 비탈에 놓인 우리는, 나비가 아닌 우리는 비척거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모든 벌레가 다 나비가 되는 것도 아
니잖은가. 나비는 날아다니는 별이다. 먼 데 별이야 정체를
알지 못한다. 제 몸속 비탈을 지워버린 나비 날개가 방향을
알려주는 진짜 빛이지. 조용한 밤이면 이따금 미끄러지는
소리가 난다. 꿈꾸는 이들이 비탈을 헛디딘 순간이리라. 빗
방울보다 슬픈 땅, 내일도 모레도 딴 길은 없다. 비탈이다
뿐이겠는가. 게다가! 지구는 돌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애지』2001.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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