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시집 · 공검 & 굴원

데카르트의 남겨둔 생각/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7. 9. 25. 18:50

 

    데카르트의 남겨둔 생각

 

    정숙자

 

 

  아무래도 저 태양이

  시시포스의 돌일 거라고

  그는 회의했다

 

  창공의 불은, 빛은

  그의 발이 미끄러질 때마다

  덜컥! 흔들렸다

 

  정오까지 밀어 올리면

  여지없이 저쪽으로 서쪽으로 굴러 떨어져

  바다 깊숙이 잠겨버리지 않는가

 

  하지만, 또

 

  이튿날이면 시시포스는 제 심장과 맞먹는 돌을, 제 심장과 맞바꾼 돌을 정오까지 밀어 올리지 않는가

 

  정녕 빨갛게   새빨갛게~

 

  그러한 노역 덕분에··· 하도나 맑고 밝고 따뜻한 그의 이마로 인해···지는 오늘도 펄펄

  날지 않는가

 

  시시포스 오직 그만이

  죽어지지도 않는 목숨을

  다만 버릇이 되어버린 그 삶을

  이어내고   이겨내고~ 밀어 올리지 않는가

 

  이제 놓아라. 다시는 밀어 올리지 마라. 시시포스여! 그만 넘겨라. 네 심장에 더 이상 끌질하지 마라.

 

  신은 너무 오래 너를 속이고 있다

  너의 신뢰를 비웃고 있지 않느냐?

 

  네 돌을 품어줄 산은 어디에도 없다. 안 그러냐?

    -『서정시학』2017-가을호

 

    ----------------------

  * 시집 『공검 & 굴원』(2부/ p. 58-59)에서/ 2022. 5. 16. <미네르바> 펴냄

  * 정숙자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외, 산문집 『행복음자리표』외

'제10시집 · 공검 & 굴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결국, 나도 나무가 되었다/ 정숙자  (0) 2017.11.16
액땜/ 정숙자  (0) 2017.10.21
저울추 저울눈/ 정숙자  (0) 2017.09.18
즐겨참기/ 정숙자  (0) 2017.09.16
측면의 정면/ 정숙자(鄭淑子)  (0) 2017.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