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시집 · 공검 & 굴원

저울추 저울눈/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7. 9. 18. 21:36

 

    저울추 저울눈

 

    정숙자

 

 

  이 겨울은 곧 지나갈 것이다

  이보다 더한 혹한이 또 닥칠 것이다 

  어찌 여겨도 해로울 리 없는

 

  그것은 견딤

  그것은 겪음

 

  우리가 만일 뜻밖의 북풍에 휘말린다면 이게 곧 자연이다, 훌쩍거리자

 

  낮아지면 견딜 수 있다. 더 이상 내려설 수 없는 곳에 다다랐을 때 약한 울음을 꺼내면 된다

 

  자연을 모방한다는 것

  허구가 아니라는 것

 

  계란 한 알도 허점이 없다, 삶으로 꽉 차 있다

 

  견디지 않아도 되는 전제란

  겪지 않아도 되는 존재란

  그런 생애란 어느 하늘에서도 팔지 않는다

 

  뭣 하나 건지지 못할지라도

 

  가라앉히고, 멈추고, 미풍조차 봉인시킨 뒤 '견딤'을 '겪음'으로 바꾸는 사이. 그 속에 새로운 눈/코 날개도 스며들리니. 새가

되는 길이란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그 얇은 껍데기 속에 견딤과 겪음을 돕는 사유다.

 

  매번 그렇게 낮아진다면 구태여 껍질을 깨지 않아도

  생각하는 새를 만나게 되지

  그리고 그와 나란히 높고 먼 창공을 날게도 되지

     -『MUNPA』 2017-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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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공검 & 굴원』(2부/ p. 62-63)에서/ 2022. 5. 16. <미네르바>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외, 산문집 『행복음자리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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