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면의 정면
정숙자鄭淑子
내일이야 어찌 알겠습니까
여태도 그래왔는데
이 일 저 일
눈보라 겹치다보면
안정된 고통권 생기더군요, 좀 야릇하지만
의문을 풀어볼까요
어떤 난국도 되풀이··· 왕왕 터지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적응에 붙들리게 되더라고요
지금 살아있음, 아직 붙어있음이 바로 그 증거가 아니고 뭐겠어요. 그리고 그것이 생애를 다듬어내는 언월도라는 걸 '곰곰' 곰탱이 쌍둥이가 쥐고 있어요. 안정된 고통권이란 익숙히 고통에 탑승한 자라는 거죠. 고통을 고공으로 바꾼 자, 혹은 농으로 바꾸는 자라고 일컬어도 무방합니다. 고통이야말로 지평을 박차고 → ↑ 뚫고 나가는 로켓이니까요
어디로?
그야 물론 신세계죠
제아무리 쩌렁한 친구라 해도
'겨우'의 순간에 얽혀들지 않을 순 없죠. '겨우'는 추락 직전 혹은 살아난 직후에 깃들이지만··· '겨우'는 최후의 끈이자 눈인 까닭에 거기서 '너끈히'를 꺼낼 수 있죠. 그리고 그 끝에는 작은 두레박도 달려 있어요. 내가 겪은 바로는 '겨우'야말로 종잣돈이고 불씨이며 부싯돌이었습니다. 매번 그 겨울을 '겨우'를 찢지만 않는다면 놓치지만 않는다면,
세상에 남은 명작들은
죽어서도 영원히 사는 그들은
대개 '겨우'에서 체류했음을 나는 믿는다
추사의 <세한도>를 봐
얼마나 멋진 '겨우'인지!
-『문학사상』 2017-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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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어떤 이들은 제 불운을 폐기하지 않고 경작한다. 순화 · 승화시키며 타인의 정화에까지 이르게 한다. 이때 획득된 아름다움을 우리는 '예술'이라 부른다. 이런 유추를 수용한다면 '겨우의 삶'도 그리 타박할 일만은 아니리라. 우리가 진정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가적 정신을 추구하며, 한순간이나마 예술의 이름으로 타오르기를 소망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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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공검 & 굴원』(4부/ p. 116-117)에서/ 2022. 5. 16. <미네르바>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외, 산문집 『행복음자리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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