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땜
정숙자
죽은 자는 울지 못한다
아니다 죽은 자는 울지 않는다*
실제로는 (이 마당에서) 죽은 자는 산 자이기 때문이다. 좀 더 푸른빛 내뿜어야 할 벙어리이기 때문이다. 몇 곱은 더 실다운 삶을 울어야 할 피리이기 때문이다. 어설픈 목을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접목할 수도 분지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죽은 자의 언어는 석상의 눈물에 불과하지만
석상의 눈물은 드넓은 깃발 흔드는 팔과
그 깃대 아래 모인 발들의 쾌변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뛸 수도 없는 죽은 자들
날 수도 없는 죽은 자들
길 수도 없는 죽은 자들
전철 바닥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빈 병, 아무래도 저 병은 무진장 신났나보다. 바다 하늘 들판이 꼭 바다 하늘 들판이어야 할 까닭이 뭐냐 마구 구른다. 킬킬킬킬킬 깨진 얼굴 비친다. 난생처음 자유다 비웠다 한다. 덜덜 턱 멎고 구른다.
간신히 태어났고
겨우 살았고
가까스로 죽어가는 자들
그러나 살아있는, 저 빈 병 바라보는 관자놀이들
이튿날 아침이면 창틀에게 신발에게도 타이른다
더 험한 탈 만났을 수도 있어
진짜! 더 새카만 털 대낄 수도 있지
그리고 또 하루 않는다, 울지
- 『다층』2017-가을(75)호(신작 발표 시 누락되었던 1연 복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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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공검 & 굴원』(4부/ p. 120-121)에서/ 2022. 5. 16. <미네르바>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외, 산문집 『행복음자리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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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층』 2023-겨울(100)호 <다층, 지령 100호 특집 시-100> 선정 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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