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화墨畵
김종삼(1921-1984, 63세)
물 먹은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전문-
▶ 빈자貧者의 미학 _ 오민석
이 시에서 할머니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의 일생은 완전히 생략되어 있다. 우리는 다만 부은 "발잔등"과 "적막하다"는 표현에서 그가 살아온 생애의 무게와 현재의 고독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가 많은 독자들에게 울림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침묵하는 부분 때문이며, 김종삼은 이 울림을 할머니와 소의 '동반同伴' 상태로 묘사함으로써 더욱 강화한다. 텍스트의 빈 곳은 (할머니와 관련된) 상상 가능한 모든 서사들로 가득 차 있다. "적막"한 할머니를 둔 모든 독자들은 각기 자신의 할머니가 겪어온 "풍상風霜'의 서로 다른 서사들로 이 텍스트의 빈곳을 메울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서사들은 다시 부은 발잔등과 적막한 현재로 응집됨으로써 특수에서 보편으로 전치轉置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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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에트리 슬램』2017-제2호 <클로즈업>에서
* 오민석/ 1993년 《동아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그리운 명륜여인숙』등, 이론서 『정치적 비평의 미래를 위하여』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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