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그날을 건너다/ 서주영

검지 정숙자 2017. 9. 21. 00:55

 

 

    그날을 건너다

 

    서주영

 

 

  비 내리는 오후가 그날을 운반해 왔다

 

  B병원 A병동 713호실,

 

  공포를 목에 두른 그날은 깊고도 슬픈 눈을 가졌다

 

  뼈마디 앙상한 그날이 가지런히 신발을 벗어놓고

 

  비틀비틀 병실을 빠져나와 빗속으로 들어선다

 

  겨울 빗속엔 갈까마귀 울음 되가웃이 숨어 있다

 

  머릿속을 송곳처럼 헤집던 그날의 울음들은

 

  모조리 내 안의 살 속에 검게 박혀 있다

 

  한 모금 숨소리가 깊은 어둠을 마신다

 

  들숨은 들어온 모든 길을 지우며 뱉어진다

 

  해진 신발 챙겨 신은 그날이 서둘러 강을 건널 때

 

  오후는

 

  산소호흡기도 헌혈도 링거도 외면하던 그날을 건너가고 있다

 

  발자국을 버린 당신이 거기 매달려 있다 

 

 

    --------------

  * 시집『나를 디자인하다』에서 / 2017. 9. 20. <지성의 상상 미네르바>펴냄

  * 서주영/ 충남 아산 출생, 2009년『미네르바』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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