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나도바람꽃/ 문효치

검지 정숙자 2017. 9. 20. 14:30

 

<단시조>

 

 

   나도바람꽃

 

    문효치

 

 

  바람이 시작된 곳

  바다 끝

  작은 섬

 

  물결에나

  실려 올까

  그 얼굴 그 입술이

 

  한 생애

  불어오는 건

  바람 아닌 그리움

   -전문-

 

  해설> 한 문장:  꽃바람의 속명屬名은 '아네모네Anemone'이다. '바람의 딸'이라는 뜻이다. 그 옛날 꽃의 신 플로라에게는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시녀 아네모네가 있었다. 그런데 남편인 바람의 신 제피로스가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 플로라가 아네모네를 멀리 쫓아버렸다. 그러자 제피로스가 따뜻한 바람이 되어 그녀를 뒤쫓아 가고 화가 난 플로라는 그녀를 꽃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전설의 꽃이다. 그러고 보면 바람이 딸이라기보다 바람과 꽃은 애초 한 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나'와 '너'가 합쳐져 '우리'란 공동체가 되는 것처럼 풀이나 꽃 이름에 붙은 '너도'나 '나도' 또한 한통속임을 말해주는 것이기에 무척 정겹게 다가온다.표제시인 「나도바람꽃」은 그리움의 표상이다.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다면 꽃의 생은 얼마나 쓸쓸하고 적막하겠는가. 꽃은 바람으로 춤을 추고 자신의 향기를 멀리 전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그리움에 몸서리치는 것이 삶 아니던가. 여기서 눈길이 가는 것은 "바람이 시작된 곳"이다. 그곳은 어떤 미지의 세계가 아니라 '그 얼굴 그 입술'로 상징되는 바다 끝의 '작은 섬'이다. 그곳에는 사랑하는 이가 존재하고 그에 대한 그리움이 곧 바람이며 그러기에 그리움에 흔들리는 것은 시적 화자인 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바람꽃일 수밖에. '너도' '나도' 바람에 울고 불며 대책 없이 흔들리는 하나의 작고 여린 꽃인 것이다. (권갑하/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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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조집『나도바람꽃』에서 / 2017. 7. 25. <시월>펴냄

  * 문효치/ 1943년 전북 군산 출생, 1966년 《서울신문》《한국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무령왕의 나무새』『별박이자나방』등 14권, 산문집『시가 있는 길』등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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