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시조>
나도바람꽃
문효치
바람이 시작된 곳
바다 끝
작은 섬
물결에나
실려 올까
그 얼굴 그 입술이
한 생애
불어오는 건
바람 아닌 그리움
-전문-
▶ 해설> 한 문장: 꽃바람의 속명屬名은 '아네모네Anemone'이다. '바람의 딸'이라는 뜻이다. 그 옛날 꽃의 신 플로라에게는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시녀 아네모네가 있었다. 그런데 남편인 바람의 신 제피로스가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 플로라가 아네모네를 멀리 쫓아버렸다. 그러자 제피로스가 따뜻한 바람이 되어 그녀를 뒤쫓아 가고 화가 난 플로라는 그녀를 꽃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전설의 꽃이다. 그러고 보면 바람이 딸이라기보다 바람과 꽃은 애초 한 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나'와 '너'가 합쳐져 '우리'란 공동체가 되는 것처럼 풀이나 꽃 이름에 붙은 '너도'나 '나도' 또한 한통속임을 말해주는 것이기에 무척 정겹게 다가온다./ 표제시인 「나도바람꽃」은 그리움의 표상이다.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다면 꽃의 생은 얼마나 쓸쓸하고 적막하겠는가. 꽃은 바람으로 춤을 추고 자신의 향기를 멀리 전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그리움에 몸서리치는 것이 삶 아니던가. 여기서 눈길이 가는 것은 "바람이 시작된 곳"이다. 그곳은 어떤 미지의 세계가 아니라 '그 얼굴 그 입술'로 상징되는 바다 끝의 '작은 섬'이다. 그곳에는 사랑하는 이가 존재하고 그에 대한 그리움이 곧 바람이며 그러기에 그리움에 흔들리는 것은 시적 화자인 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바람꽃일 수밖에. '너도' '나도' 바람에 울고 불며 대책 없이 흔들리는 하나의 작고 여린 꽃인 것이다. (권갑하/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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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집『나도바람꽃』에서 / 2017. 7. 25. <시월>펴냄
* 문효치/ 1943년 전북 군산 출생, 1966년 《서울신문》《한국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무령왕의 나무새』『별박이자나방』등 14권, 산문집『시가 있는 길』등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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