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어린 양/ 김희숙

검지 정숙자 2017. 9. 19. 15:06

 

 

     어린 양

 

    김희숙

 

 

  그 옛날 종려나무 밑에 어린 양을 묶어놓고 나는 깜박

잊고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 순종하는 어린 양들은 흩어

지는 구름의 날씨가 되었다

 

  태초에 풀씨들이 하늘에서 쏟아졌다 어린 양들은 풀밭

을 관리하는 별자리들이 되었다 지금도 봄이면 지상의 들

판마다 풀씨들을 쏟아내는 파종법이 있다

 

  황폐한 사막엔 뿌리가 깊은 나무들이 있고 그 뿌리는

열대의 어느 우물과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그 나무에서

4월의 가시면류관은 새싹으로 부활하였다

 

  4월의 바람 속에서 따뜻한 소리가 어린 양들을 부른다

문득 내가 묶어두고 온 어린 양이 치렁치렁 울고 있을 것

같기도 하여 자꾸 기도하고 싶은 것이다

 

  열린 소리들은 닫힌 세상의 대답이고 닫힌 대답은 깊

숙한 곳의 소리들이다

 

  어린 양은 지금쯤 제 고삐로 면류관을 만들었거나 묶인

말뚝을 강대상으로 쓰고 있지는 않을까 안타까이 여긴 어

느 목자가 어린 양의 목에 메아리를 넣어주었을지도 모른

   -전문-

 

 

  해설> 한 문장:  시는 근본적으로 은유의 언어이지만 은유를 조직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프로이트는 꿈의 조직원리 중의 하나로 '응축condensation'을 들었다. 응축은 말 그대로 이질적인 항목들을 한데 묶는 것을 의미한다. 프로이트에게 있어서 이질적인 항목이란 물론 이질적인 욕망 혹은 욕망의 대상을 말하는 것이고, 응축은 이런 것들이 강제로 결합되는 방식을 일컫는 것이다. 응축의 결과, 꿈에서는 규범을 넘어서거나 파괴하는 이미지들이 생산된다. 라캉J. Lacan은 야콥슨R. Jakobson의 은유 개념을 빌어 프로이트의 응축을 은유로 바꾸어 말한다. 그리하여 라캉은 "무의식조차도 언어적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문학 특히 시에서 은유 역시 위의 개념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라캉을 끌어들이면 시의 언어가 무의식의 언어이고 그런 점에서 시는 구별 · 분리 혹은 분석 · 분류의 언어가 아니라 통합의 언어이고 에로스의 언어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은유를 "이름 바꾸기"로 명명함으로써 서로 다른 이름들의 '공존'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효과를 설명했다. 어떤 경우든 시적 은유는 서로 다른 사물들을 '즉각적'으로 연결시키고 그 안에서 유사성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 사물의 의미가 다른 사물의 의미와 겹쳐지고 확장되는 현상이 바로 은유인 것이다. (오민석/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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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곡물의 지도』에서 / 2017. 7. 30. <도서출판 달샘>펴냄

  * 김희숙/ 전남 광주 출생, 2011년『시와표현』신인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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