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피도포라*
정무현
연약하여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마지막 힘을 다해 장막 속에서 기어오르기로 했다.
이마저 못한다면 종족을 끊은 죄가 된다.
큰 나무를 타고 오르니 어지럽고 무섭다.
겪어보지 못한 바람이 사정없이 뺨을 후려댄다.
어떡해서든 살아야 한다.
나무 우듬지로 머리를 드밀고 받아든 한 줌의 햇살
너무 높아 아래로 내려보낼 수가 없다.
식구의 아우성이 온몸을 흔든다.
애초에 블랙홀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아둔한 머리로 할 수 있는 길은
제 손에 구멍을 내는 치명상이다.
볼품없이 벌레에 갉혀 없어지느니
빛을 빨아먹는 구멍충을 길러
길게 빠르게 빛을 거두어 두련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전문-
* 스스로 잎에 구멍을 내어 아래쪽 잎에도 햇빛을 닿게 하여 살아가는 덩굴식물
▶ 해설> 한 문장: 식물은 잎을 통해 광합성을 해야만 살 수 있다. 빛은 천지 사방에 있지만 모든 식물이 공평하게 그 빛을 쬘 수 있는 건 아니다. 언뜻 식물은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빛을 쫓아다니고 있다. 다른 식물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 한 줌의 빛이라도 더 쬐려는 이들의 생존경쟁은 동물의 그것 못지 않다. 더구나 식물은 이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의 향일성向日性은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사투에 다름없다. 당연히 이런 극한의 생존경쟁 속에서 잎에 구멍이 뚫린다는 건 치명적인 일이다. 그런데 어떤 식물은 일부러 잎에 구멍을 낸다. 무엇 때문일까?/ 이 시의 각주에 따르면 '라피도포라'는 "스스로 잎에 구멍을 내어 아래쪽 잎에도 햇빛을 닿게 하여 살아가는 덩굴식물"이다. 덩굴식물인 라피도포라는 빛을 사냥하기 위해 큰 나무를 타고 오르는데, 드물게 무성한 나뭇잎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을 만나기도 한다. 이때 위쪽의 잎들이 아래쪽 잎들의 햇빛을 가리게 되면, 아피도포라는 위쪽 잎에 스스로 구멍을 내어 막 자라나는 잎들에게 빛을 나눠준다. 구멍이 난 잎에게는 손해지만 전체 잎들이 받을 수 있는 빛의 양은 그 손해 이상으로 늘어난다. 개체의 자기 희생이 전체를 살리는 것이다. 라피도포라는 비록 식물이지만 희생과 나눔을 실현함으로써 오랜 세월 적자생존의 전장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EBS 다큐프라임 <녹색동물> 2부 '굶주림'에서). 이 시의 화자는 제목 그대로 '라피도포라'이다. 라피도포라는 어지럼증과 공포를 느끼면서도 마지막 힘을 다해 숲의 장막 속을 기어오른다. 나무 우듬지로 머리를 드밀고 어떡해서든 한 줌의 햇살을 받아 생生을 지속하려는 라피도포라는 식구를 위해 생활 전선에서 분투하는 가장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겪어보지 못한 바람에 사정없이 뺨을 얻어맞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라피도포라는 저 큰 나무들에 해하여 연약하기만 한 '을'이다. 재언再言하건대 우리는 모두 갑이면서 을이다. 라피도포라의 이파리를 떼어놓고 보면 그 안에도 권력이 엄존한다. 위쪽에 자리한 잎은 아래쪽 잎의 생사여탈을 쥐고 있다. 잎사귀들이 그저 햇빛을 더 받는 일만 생각했다면 라피도포라는 지금껏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이파리는 각각 따로 존재하는 듯하지만 그들은 라피도포라는 진정으로 사는 길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인간은 인간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점에서 뿌리를 옮길 수 없는 식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인간과 식물은 같은 생물로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겪는 어려움을 똑같이 겪는다. 영양분을 섭취해야 하고,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식물을 한낱 미물로 취급할 뿐이지만 삶의 태도에 있어서 과연 인간이 라피도포라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이현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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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사이에 새가 들다』에서 <2017. 8. 25.> 리토피아>펴냄
* 정무현/ 2014년『리토피아』로 등단, 시집『풀은 제멋대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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