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落
박준
그날 아버지가
들고 온 비닐봉지
얄랑거리는 잉어
잉어 입술처럼
귀퉁이가 헐은
파란 대문 집
담벼락마다
솟아 있는
깨진 유리병들
월담하듯 잉어는
내가 낮에 놀던
고무대야에 뛰어들고
나와 몸집이 비슷했던 잉어
그날따라 어머니는
치마 속으로
나를 못 숨어들게 하고
이불을 덮고 끙끙 앓다가
다 죽기 전에 손수 배를 가르느라
한밤중에 잉어 내장을 긁어내느라
탯줄처럼 길게
끌려내려오던 달빛
"당신 이걸 고아먹어야지 뭐하려고 조림을 해"
다음날 아침
밥상에 살이 댕댕하게 오른
그러니까 동생 같은
-전문-
해설> 한 문장: 그날은 어떤 날이었을까? 동생이 태어난 날? 혹은 동생이 이 세계로 올 뻔하다가 저 너머로 가버린 날? 그날, 아버지는 산모를 위해 잉어를 사들고 들어온다. 잉어는 비닐봉지 속에, 그리고 산모는 "잉어 입술처럼/ 귀퉁이가 헐은/ 파란 대문 집/ / 담벼락마다/ 솟아 있는/ 깨진 유리병들" 속에 갇혀 있다. 잉어는 내가 낮에 놀던 고무대야 속으로 월담을 하듯 뛰어든다. 시인은 그 잉어의 몸집이 자신의 몸만큼 크다고 했다. 월담을 하는 순간 잉어는 'Cyprinus carpio' 라는 현실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는 이름에서 벗어나 '잉어'라는 신화적인 존재로 거듭난다. 신화 속에서 한 존재는 엄청나게 팽창하거나 혹독하게 수축한다. "월담"을 하는 순간, 즉 경계를 넘는 순간, 존재 이탈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제 사건은 현실의 "비닐봉지"를 뚫고 나와 신화의 "고무대야" 속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날따라" 원래 아이의 영토였던 어머니의 "치마 속"으로 아이를 못 들어오게 한다. 원래 어머니의 치마 속도 고무대야도 아이의 것이었다. 아이는 두 영토를 잃어버렸다. 자신이 신화였던 두 영토를 아이는 잃어버리고 그곳에서 새로운 신화가 탄생되는 것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아픈 어머니는 "다 죽기 전에 손수 배를 가르느라/ 한밤중에 잉어 내장을 긁어내느라" 바쁘고 그 와중에 탯줄처럼 달빛이 끌려나온다. 그다음 날, 밥상 위에 오른 것은? "동생 같은" 잉어조림/잉어탕이다. 탄생, 그 떨어지는 순간이 그렇게 이물스럽고도 낯설다. 나는 동생의 출생을 보면서 나조차도 몰랐던 내 출생의 순간을 재상한다. 내가 태어나던 그날, 나는 밥상 위에 올려져 있다. 이것은 1980년대 후반을 소화해내지 못한 고통을 기록하던 김현 선생 일기의 한 구절과 닮아 있다. 앞에서 인용한 일기에서 이런 세계를 김현 선생은 "카프카적 세계"라고 명명했다./ 『변신』에 등장하는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로 변신한 채 아버지가 던진 사과를 등에 얹고 말라 죽어가는 그 세계. 어느 날 일어나보니 벌레로 변한 것처럼, 어느 날 우리는 어떤 곳으로부터 어떤 시간으로부터 '사람'으로 변신되어 툭, 떨어진다. 열 달가량 자궁이라는 감옥 혹은 보호처에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 떨어짐을 준비했을까? 어쨌든 떨어진다. 한 가족의 밥상 위에 '잉어조림/잉어탕'이 되어 툭, 떨어진다./ 나는 이 낯선 세계에서 어떻게 삶을 겨우 유지하는가? 어머니는 치마 밑으로 내가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새로운 탄생이 시작되었기에. 동생이 태어난 날, 혹은 '낙'인 날 잉어조림/잉어탕을 받아든 당신은 이런 유사 신화를 쓰지 않고 그 순간을 어떻게 견디겠는가. 어떤 의미에서 시는 모든 유사 신화의 현장 기록일지도 모르겠다. (허수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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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에서/ 1판1쇄 2012.12.5./ 1판 31쇄 2017.6.30.<(주)문학동네>펴냄
* 박준/ 1983년 서울 출생, 2008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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