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속의 길
박하리
길을 걷다 길의 벽을 만난다.
벽 안으로 어스름한 어둠이 들어오고
희뿌연 연기도 바람과 함께 들어온다.
시끌한 말들도 따라 들어온다.
안개 속이다.
퍼덕이는 날갯짓으로
너울너울 벽의 높이를 어름해 본다.
깊이를 감춘 벽은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던 벽이 발끝으로 길이 된다.
넘어질 벽이기도 하고 넘지 못한 벽이기도 하다.
등 뒤에 펼쳐진 날개의 깃털 속으로 바람을 모아
푸드득 푸드득, 날갯짓으로 벽을 넘어본다
길이다.
날개 안으로 태양의 빛은 들어오고,
그 빛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안개로,
떠다니는 먼지로 날아간다.
길 위 태양의 빛은
벽을 타고 오르는 꽃향기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언어는 존재의 숙명이 아니지만, 시인에게 언어는 존재론적 숙명이다. 커뮤니케이션 하는 동물로서 인간에게 '말과 글'은 아직도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의사소통의 여러 수단으로서 그것의 중요성은 나날이 감소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감소와 반비례하여 '시인'으로 자기를 정위(정위)하고자 하는 존재에게는 보다 확고하고 예리한 인식이 요구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 무의식을 개인적 차원에 국한해 이해하려고 했던 프로이트의 '빙산 모델'과 달리 융은 '섬 모델'을 제안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마치 유전자처럼 원형적인 무의식의 바다를 선천적으로 물려받고, 그 바다에 각 개인이 하나의 섬처럼 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섬은 수면 위로 의식과 초의식이 드러나 있고, 수면 아래에는 개인무의식이 잠겨있는 향상이 된다. (백인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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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말이 퍼올리는 말』에서/ 2017. 8. 25. <리토피아> 펴냄
* 박하리/ 강화 서검도 출생, 2012년 『리토피아』로 등단. 「막비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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