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브(Curve)
김병호
소식이라도 한번 주지 그랬나요
하늘에도 커브(Curve)가 있어 별자리나 구름이 급히 기
우는 자리가 있습니다
당신이 봄을 앓고 망명을 오래 생각하는 동안 오후는
다만, 다정한 거짓말에 몰두하는 자세입니다
섭섭하지 않은 궁리와 아무렇지도 않은 수작으로 마음
속에 마음을 잠급니다
이제, 당신 없이도 고독을 매수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
니다
짧은 치마의 백핸드 발리처럼 훌쩍, 넘어오는 명랑한
이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덜거덕거리는 울음을 들여다보면 그제야 꽃이 지는 기
적이 있습니다
구름과 허공 사이에 놓인 당신을 넘어 질주하는 허기는
까맣고 딱딱하게 오후를 태웁니다
당신은 우주에 떠 있는 커브 안으로 사라집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자아는 '커브'를 통해 "당신 없이도 고독을 매수하는 방법"을 배웠으며, '백핸드 발리'를 통해 "명랑한 이별을 기억"하는 자세를 익혔습니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하지요? 고독과 이별의 눈물을 들여다보면 "그제야 꽃이 지는 기적"이 일어나니 말입니다. 보통이라면 꽃이 지면서 고독과 이별의 정리情理가 발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지요. 이때 유의할 사항은 이런 시간과 감정의 역전逆轉이 고독과 이별, 꽃짐의 설움을 강화하기 위한 수사적 장치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 비유하건대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타나토스의 슬픔을 미래발發 에로스의 명랑으로 형질 전환하기 위한 감정의 복화술이자 변검술의 일종인 것입니다. 여기 내포된 '아르스'와 '테크네'를 결속하는 구절이 "섭섭하지 않은 궁리와 아무렇지도 않은 수작으로 마음속에 마음을 잠"그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최현식/ 인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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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백핸드 발리』에서/ 2017. 6. 30. <(주)문학수첩> 펴냄
* 김병호/ 1971 광주 출생, 2003년 《문화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달 안을 걷다』『밤새 이상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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