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장 속의 검독수리
김경후
왕은 죽지 않지
용포 대신 잘린 비행깃
어명 대신 푯말
왕은 죽진 않지만
왕궁 대신 동물원 쇠창살 속에 있지
찢어발기는 건 냉동 생쥐
노려보는 건 허공
어딨냐고? 왕의 위용?
갈고리 부리와
활공은?
그건 먼지 바닥 검은 그림자 속에 있지
그래도 왕은 죽지 않고
울부짖고 있지
여기 돌을 던져
차라리 짐을……
낄낄대며 지나가는 아이들 소리에
묻힌 검독수리 흐느낌
-전문-
해설> 한 문장: 막스 피카르트(Max Picard)에 따르면 침묵은 단순한 공백이나 중지의 상태가 아니라, 말이 생성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는 무엇이다. 침묵이란 말을 품은 무엇이며, 잠재태로서의 '없음'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떠한가. 말로부터 침묵이 오는 것이기도 하다면, 그 말과 침묵은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나. 연주될수록 침묵을 부르는 음악이 존재하듯, 어떤 말은 말해짐으로써 침묵을 퍼뜨린다. 그리고 "침묵의 세계와 관계를 가지고 있는 말은 같은 말이면서도 침묵과는 떨어져 있는 말과는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을 표현한다."(막스 피카르트 『침묵의 세계』, 최승자 옮김, 까치 1985.169면.) 김경후의 시가 그런 말을 닮았다. (이재원李在苑/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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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오르간, 파이프, 선인장』에서/ 2017.8.17. <(주)창비> 펴냄
* 김경후/ 1971년 서울 출생, 1998년 『현대문학』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그날 말이 돌아오지 않는다』『열두 겹의 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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