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고용雇傭하다
이관묵
지하철 1호선 서울역 승강장
스크린도어의 시들이 제복 차림으로 침침하게 서 있다 청
마도 목월도 침침하게 서 있다 맨 뒤 용래 선생도 쪼그리고
앉아 훌쩍이고 있다 시들의 유일한 노동은 두 팔로 시를 열
었다 닫는 일. 시의 방에 들어가 몸 덥혀 나오는 한순간을,
시에 갇혀 덜컹덜컹 흔들리며 이쪽 삶에서 저쪽 삶으로 건
너가는 한 송이의 시간을,
시들이 지키고 있다
출입문 시들지 않게 보살피고 있다
시가
시가
시가
시끌벅적한 삶의 문지기라니!
방금 도착한 발에게 추운 목례를 건넨다
방금 벽을 후려치는 주먹에게 언 문을 열어준다
비정규직으로 고용된 시들
이따금 파업에도 동참하는 시들
연금도 없이 노후에 고생하는 시들
저 시들의 자택自宅은 어디일까
-전문-
해설> 한 문장: 냉소와 조롱(혹은 자책과 연민)의 포즈가 동반된 이 장면들에는 시詩의 근본정신을 망각한 채, 일상 문법의 차원에서 그것을 <도구적>으로 활용하는 물질만능주의의 세태에 대한 안타까움이 감지된다. 아울러 "시가/ 시끌벅적한 삶의 문지기"로 전락한, 다시 말해서 예술마저도 '교환가치'로 운용되는 오늘날의 <기계적> 현실에 대한 고발정신이 내재한다. 해학적 감각으로 구성된 이 시가 일순간, 우울함과 쓸쓸함의 정서로 점철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정이 이러할 때, "저 시들의 자택自宅은 어디일까"라는 시인의 물음은 당연한 수순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이 질문은 심층적 차원에서 시인 자신에게 재차 되돌려질 수 있을 법하다. (이성천/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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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동백에 투숙하다』에서/ 2017.8.10. <(주)천년의시작> 펴냄
* 이관묵/ 1947년 충남 공주 출생, 1978년 『현대시학』으로등단, 시집『수몰지구』『시간의 사육』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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