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누스 푸디카 3
기억의 탄생
박연준
그게 첫 동굴이었지
스물아홉의 젊은 아버지가 술 취해 나를 찾고,
나는 다섯 살
신은 내게 이불을 덮어주고 사라졌다
울면서, 남자는 아이를 내놓으라고 소리쳤지만
나는 웅크린 채 아늑했지
그러고는 주문을 걸었다
당신은 결코 나를 가질 수 없을 거예요
미끄러운 건 쉽게 잡히지 않으니까요
나는 담을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니까요
손가락을 입에 문 채 뺨은 바닥에 대고
엉덩이를 높이 치켜든 어둠이 이불 속에서
고요히 높아져갔지
우리는 동산처럼 오래되었구나
훗날 기억이 왜 이렇게 모질게 남아 있을까 생각하다
첫 동굴 속에서 내 어둠이
증발 불가능한 액체임을 알게 되었네
나는 고인 채로 찰랑이다,
온 세상으로 흘러다녔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시의 제목으로 차용해온 '베누스 푸디카', 그러니까 우아한 팔 동작으로 한 손으로는 젖가슴을 한 손으로는 성기를 가리고 있는 그림 '정숙한 비너스'에는 역사적으로 비난을 받아왔던 여성의 나신(裸身)에 가했던 원죄의 아우라가 서려 있다는 사실을 환기해야겠다("「메디치의 비너스」(피렌체 미술관)나 시돈의 「아프로디테」"와 같은 '정숙한 비너스'에는 "벌거벗은 남자는 양식에 어긋나지 않지만, 벌거벗은 여자들은 사람들의 빈축"(장 끌로드 블로뉴, 『수치심의 역사』, 전혜정 옮김, 에디터, 2008, 459면)을 사왔다, 이 그림은 역설적으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주체, 남성적 힘의 상징이나 폭력의 기원을 폭로한다). 박연준은 이와 같은 이데올로기를 '정숙한 자세'라고 부른다. 정숙한 자세에는 감수성의 발현이나 자유로운 감각, 삶을 고르게 표현하는 힘이 제거되어 있다. 강요된 것이나 통념이 덧씌운 편견, 혹은 그러한 태도가 바로 정숙한 자세이기 때문이다. 젖가슴과 성기가 가려진 것은 따라서 부끄러움의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이 두 신체 기관이 사회적 · 역사적으로 지워지거나 잘렸다는 사실에 대한 강력한 비유이며, 이 지점에서 시집 전반은 상실과 훼손, 억압과 결여를 한번 더 사유의 반열로 올려놓는 목소리를 울려낸다. 따라서 부끄러움은 외려, 폭력적인 것들에 대항한다. 부끄러움은 몸을 통과하는 모든 것, 몸의 경험, 몸의 감각에 의지하여, 수직적으로 구조화된 폭력과 고정된 사회적 양식의 중심을 이탈시키고 시에서 저항하는 발화를 창출해내는 시적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조재룡/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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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베누스 푸디카』에서/ 2017.6.19. <(주)창비> 펴냄
* 박연준/ 1980년 서울 출생,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에「얼음을 주세요」가 당선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산문집『소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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