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오성호_문학은 무엇이었는가(발췌)/ 귀농(歸農) : 백석

검지 정숙자 2017. 6. 18. 00:36

 

    귀농歸農

 

    백석(1912~1996, 84세)

 

 

  백구둔의 눈 녹이는 밭 가운데 땅 풀리는 밭 가운데

  촌부자 노왕老王하고 같이 서서

  밭최뚝에 즘부러진 땅버들의 버들개지 피여나는 데서

  볕은 장글장글 따사롭고 바람은 솔솔 보드라운데

  나는 땅임자 노왕한테 석상디기 밭을 얻는다

 

  노왕은 집에 말과 나귀며 오리에 닭도 우울거리고

  고방엔 그득히 감자에 콩곡석도 들여 쌓이고

  노왕은 채매도 힘이 들고 하루종일 백령조白翎鳥소리나 들으려고

  밭을 오늘 나한테 주는 것이고

  나는 이젠 귀치않은 측량測量도 문서文書도 싫증이 나고

  낮에는 마음놓고 낮잠도 한잠 자고 싶어서

  아전 노릇을 그만두고 밭을 노왕한테 얻는 것이다

 

  날은 챙챙 좋기도 좋은데

  눈도 녹으며 술렁거리고 버들도 잎트며 수선거리고

  저 한쪽 마을에는 마돝에 닭 개 즘생도 들떠들고

  또 아이 어른 행길에 뜨락에 사람도 웅성웅성 흥성거려

  나는 가슴이 이 무슨 흥에 벅차오며

  이 봄에는 이 밭에 감자 강냉이 오이며 당콩에 마늘과 파도 심그리

라 생각한다

 

  수박이 열면 수박을 먹으며 팔며

  감자가 앉으면 감자를 먹으며 팔며

  까막까치나 두더쥐 돝벌기가 와서 먹으면 먹는 대로 두어두고

  도적이 조금 걷어가도 걷어가는 대로 두어두고

  아, 노왕, 나는 이렇게 생각하노라

  나는 노왕을 보고 웃어 말한다

 

  이리하여 노왕은 밭을 주어 마음이 한가하고

  나는 밭을 얻어 마음이 편안하고

  디퍽디퍽 눈을 밟으며 터벅터벅 흙도 덮으며

  사물사물 햇볕은 목덜미에 간지로워서

  노왕은 팔짱을 끼고 이랑을 걸어

  나는 뒷짐을 지고 고랑을 걸어

  밭을 나와 밭뚝을 돌아 도랑을 건너 행길을 돌아

  지붕에 바람벽에 울바주에 볕살 쇠리쇠리한 마을을 가리키며

  노왕은 나귀를 타고 앞에 가고

  나는 노새를 타고 뒤에 따르고 

  마을끝 충왕묘蟲王廟에 충왕을 찾아뵈러 가는 길이다

  토신묘土神廟에 토신도 찾아뵈러 가는 길이다

     -전문-

 

 

  ▶문학은 무엇이었는가?-상상력의 불온성(발췌) _ 오성호

  이 시가 백석의 실제 귀농 경험을 그린 시라고 보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백석이 이런 식으로 농사를 지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도대체 소작료를 염두에 두지 않고 땅을 빌려주는 지주, 그리고 생계와 소작료를 위해서 뼈 빠지게 일하지 않는, 그리고 자기가 생산한 것을 선선히 벌레나 도적에게 내줄 농민이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1930년대 말 신생 만주국에서라면 더더욱 그렇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바로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이 지주-소작 관계와 한없이 " 귀치 않은"일 다 팽개치고 "낮잠"이나 자려는 게으른 귀농의 꿈 속에는 현실, 즉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가혹한 소작제도, 또 근대 이후 전면화된 인간 중심, 모노컬쳐mono cullture 중심의 약탈적 농법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내장되어 있다.

  "밭을 주어 마음이 한가"한 지주 노왕과 "밭을 얻어 마음이 편안"한 나 사이의 관계는 착취하는 지주, 수탈당하는 소작인이라는 현실적 구도와는 전혀 다르다. 땅을 빌려준 노왕과 땅을 빌린 화자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평등한 관계, 시쳇말로 하자면 윈윈win-win의 관계에 있다. '촌부자 노왕'은 하루종일 "백령조 소리"나 들으며 지낼 수 있는 여유를 얻기 위해 땅을 화자에게 내주고 화자는 "수박이 열면 수박을 먹으며 팔며/ 감자가 앉으면 감자를 먹으며 팔며/ 까막까치나 두더쥐 돗벌기가 와서 먹으면 먹는 대로 두어두고/ 도적이 조금 걷어가도 걷어가는 대로 두어두고" 살겠노라고 지주인 노왕에게 당당하게 자기의 생각을 밝힌다. 힘들여 농사를 지을 생각도, 거둔 것을 독차지할 생각도 전혀 없음을 선언한 것이다.

  물리적 강제 때문에 이루어지는 노예 노동이나 경제적 강제에 따르는 자본주의 하에서의 노동이 소외된 노동의 전형적인 예라면 이 시는 무위無爲로 유위有爲를 대신하는 한량없이 게으른 농사꾼이 되겠다는 화자의 진술을 통해서 그런 소외된 노동을 에둘러 비판하고 있다. 이 소외된 노동에 대한 대안은 노동은 꼭 필요할 때, 마음이 내킬 때 하는 자유로운 노동이다. 그것은 더 많은 것을 생산하기 위해서 인간과 자연을 쥐어짜는 대신 자연이 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삶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자연이 주는 것을 살아있는 모든 다른 것들과 나누는 삶, 여기에는 어떤 대립과 갈등도 존재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여유롭고 자유로운 삶은 인간의 발전과 인간성의 전면적인 도야, 그리고 일체의 미적 가치의 창조를 위한 필수조건이다. 이렇게 보면 백석은 이 시에서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인간이 가진 모든 창조적 가능성을 자유롭게 펼쳐나갈 수 있는 유토피아적 삶에 대한 꿈을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문학은 이미 주어져 '있는 것'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토대로 '있음직한 세계'를 창조함으로써 현실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을 넘어서 마땅히 '있어야 할 세계'를 꿈꾸게 만든다. 부재하는 장소로서의 유토피아U-topia를 그림으로써 그 세계에 대한 꿈을 유포한다. 동시에 우리 자신의 삶이 우리가 꿈꾸는 세상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를 깨닫게 만든다. 이 꿈, 그리고 꿈과 현실 사이의 거리에 대한 자각이 느리지만 조금씩 우리 자신과 세계를 더 나은 것으로 변화시켜나가는 실천의 동력이 된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의 삶과 사회의 변화 뒤에는 이런 식으로 문학을 통해 유포된 다양한 꿈들, 그리고 꿈과 현실 사이의 거리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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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가』2017-여름호 <기획특집 1 / 문학이란 무엇이었는가? ⑨/ 문학은 무엇이었는가?> 에서

   * 오성호/ 198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별이 뜨기까지 우리는』『빈집의 기억』외, 저서 『북한 시의 사적 전개 과정』『낯익은 시 낯설게 읽기』외, 현 순천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