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아르바이트/ 서윤규

검지 정숙자 2017. 8. 20. 15:38

 

 

    아르바이트

 

    서윤규

 

 

  오늘은 도축장에 가서 일당을 받고 닭 손질을 하였다.

  애벌레가 허물을 벗어놓은 듯 허름한 비닐하우스

  속에서 시퍼런 칼날을 들어 닭 모가지를 치고

  배를 갈라 내장을 꺼냈다.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낡은 선풍기가

  고개를 돌릴 적마다 닭 모가지 비트는 소리를 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푹푹 찌는 무더위와 한숨 속에서

  옆으로 기우뚱 관절마디를 꺾으며

  비닐하우스 철근이 붉은 녹물을 흘리며 녹아내렸다.

  사형 집행하듯 죄 없는 닭 모가지를 내리칠 적마다

  눈을 뜨고 죽은 닭, 대가리들이

  툭, 툭, 발밑에 떨어졌다.

  어느새 닭, 대가리들이 무덤의 봉분처럼 쌓였다.

  비닐하우스가 다시 한 번 허물을 벗고 날아오르려는지

  부르르 몸부림을 치고

  땅거미가 지도록 닭 모가지를 끊고 배를 가르며

  내장 가득 핏빛 노을이 되어 고인

  닭 울음소리를 긁어낸다.

  마지막 남은 닭 모가지를 내리찍는 순간

  눈을 반쯤 뜨고 죽은 닭이

  반쪽짜리의 삶을 지그시 바라본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세계(우주)를 바라보는 방향 중에 크고 장대하고 장렬한 것, 가령, 별의 죽음이나 역사적 단절의 상흔 속에서 인생과 우주의 비밀을 파지한 것처럼 외칠 수도 있다. 아니라면 어차피 과거일 수밖에 없는 찬미, 혹은 회한의 노래를 마치 오늘 저녁 조촐한 저녁식사의 기도처럼 읊조릴 수도 있다. 이것은 순전히 신념, 믿음이 아니라 종교적 자기 확신에 대한 다은 표현일 뿐이다. 하지만 여기 이 지상에는 자기를 믿으며, 회의하며 따라서 소통하며 자기 변혁을 꿈꾸는 아주 작은 존재들이 존재한다. 희미한 강력한 존재의 증거들이 있다. (……) '아파한다'는 일종의 정의를 공감으로 규정할 것인가, 아니면 '아비투스(habitus)의 장(場) '으로 이해할 것이냐는 정말 어렵고도 이번 시집을 읽는 상반된 방향이 될 것이다./ 이 집을 관찰하는 독자로서 나는 많은 설득적 정보와 마주하게 된다. 동시대를 살아가며 같은 궤적의 문제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를 적나라하게 '아르바이트'라는 시를 통해 보여준다. (……) 아비투스(habitus)란, 그것이 시적 개념으로 변용될 수 있다면 시대적, 현실적 상황의 압력 아래서 개인적 취향과 신념이 상호 충돌하면서 빚어내는 다른 형태의 자기감응의 형식, 또는 구조화된 힘이라 할 수 있다. (백인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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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두부는 비폭력 무저항주의자』에서/ 2015. 5. 22. <문학의전당> 펴냄

  * 서윤규/ 경기 양평 출생, 1990년『현대시조』에 시조, 2001년『월간문학』신인상 당선으로 작품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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