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살 파킨슨에 맞선 사람들
김은기金殷基/ 인하대학교 생명공학과 교수
K사장은 '죽어본 사람'이다. 그는 평생 몸으로 현장을 뛰고 술로 고객을 만났다. 말술은 기본이고 폭탄주는 양념이었다. 머리가 지끈거리면 아스피린을 털어 넣고 일정을 강행했다. 중국 출장 때 일이다. 배가 살살 아팠지만 마땅한 약을 못 구했다. 마침 지니고 있던 진통제 아스피린을 먹자 신기하게 위 통증이 가라앉았다. 그렇게 며칠 동안을 아스피린으로 버텼다. 귀국길 인천공한 화장실에서 그는 피를 토해냈다. 응급실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위암 말기 같다고 했다. 그는 포기했다. 가족과 마지막 여행을 강릉으로 갔다. 그동안 무덤덤하게 봐왔던 파도가, 들국화가, 구름이 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웠다. 가족과 같이 지내지 못한 시간들이 아쉬웠다. 살고 싶었다. 수술로나마 시간을 벌고 싶어 떠날 때 꺼놨던 핸드폰을 켰다. 문자, 전화가 쌓여있었다. '아스피린 과다복용 위출혈, 조직검사 음성.' 오진이었다. 이 사건으로 그는 '죽어본 사람'이 되었다. 친구들은 농담처럼 묻는다. '죽는다 생각하니 기분이 어때?'
암 진단을 받으면 '죽을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앞이 캄캄해진다. 하지만 대부분 암은 조기발견하면, 퍼지지 않으면, 생존율이 90% 이상이다. 정작 어려운 것은 치료법이 없는 난치병이다. 파킨슨, 치매 등 퇴행성 두뇌 질환은 치료제가 아직 없다.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1817년 영국의사 제임스 파킨슨은 손이 떨리는 뇌질환을 처음 학계에 보고했다. 그의 이름을 딴 파킨슨병은 올해로 200주년을 맞는다. 이 병은 성경에도 언급될 만큼 오래된 병이다. 누가복음 13절 11장에 '18년 동안 귀신들려 몸이 다 구부러지고 전혀 몸을 들지 못하는' 한 여자 이야기가 나온다. 구부러진 자세, 움직이기 힘든 다리는 전형적인 파킨슨병 증세다. 복싱 전설 무하마드 알리는 LA 올림픽에서 떨리는 몸으로 성화를 옮겼다. 그는 42세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파킨슨은 근육이 잘 안 움직인다.
두뇌 흑질黑質에서 생산된 도파민은 근육 운동을 조절한다. 파킨슨병에 걸리면 도파민 생산 세포가 죽어나간다. 금년 6월 저명한 학술지 《네이처》는 환자 두뇌의 비정상 단백질 덩어리가 '외부의 적'으로 간주되어 면역 공격을 받는다고 밝혔다. 결국 제 몸에 총질하는 '자가 면역'이 파킨슨을 일으킨다는 이야기다. 현재 가능한 대응 방법은 도파민 원료인 '레보도파L-DOPA'다. 이 약은 뇌 속에서 도파민으로 변한다. 하지만 이 약은 치료제가 아닌 증상 완화제다. 약을 먹으면 즉시 청년처럼 몸 근육이 제대로 움직인다. 하지만 약 기운이 떨어지는 4시간 후에는 다시 엉거주춤한 파킨슨병 노인이 된다. 장기 복용 시 내성에 따른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다른 방법은 두뇌 수술이다. 두죄에 전극을 꽂는다. 가슴에 삽입한 배터리로 전기 자극을 주면 근육 운동이 정상으로 된다. 하지만 치료가 아닌 현상유지 방법이다. 최근에는 죽어버린 도파민 생산 세포를 보충하는 방법이 개발되었다. 이웃사촌 세포인 '성상세포'를 도파민 새포로 변환시켰다. 근본 치료가 가능한 방법이다. 하지만 쥐를 대상으로 한 결과다. 인간에 적용하기까지는 남어야 할 산이 많다.
결론은 파킨슨병은 아직 근본적인 치료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는추면 다행이다. 파킨슨병의 증세가 단순히 손 좀 떨리고 걷기가 불편할 정도면 괜찮다. 참으면 된다. 하지만 치매, 불면, 분노, 우울증이 동반한다. 손만 떨리는 것이 아니고 수면이 단축되어 일찍 죽을 수 있는 병이다. 미국의 연간 사망자 중 파킨슨병은 0.9%로 14번째 사망 순위다. 파킨슨병은 주로 50대 이후에 발병한다. 발병이 되면 제대로 건강장수를 누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21세기는 100세 장수 시대다. 현재 편균 수명이 남 81.4, 여 86.7세다. 조선 시대 평균 수명이 35세인 것에 비하면 급격히 수명이 늘어났다. 하지만 건강하게 살다가 '자연사'하는 경우는 1/3이다. 나머지 2/3는 만성질환, 암으로 사망한다. 결국 마지막 10년은 자리보전할 가능성이 2/3다. 파킨슨병으로 수명이 좀 줄기로서니 그렇게 억울해 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실제 파킨슨병 환자는 50%가 80세 이상까지 생존한다. 즉 몸이 어정쩡해지고 걷기 힘들고 손이 좀 떨려서 그렇지 잘만 견디면 된다.
'잘 견디면 된다'라는 이갸기는 정상인이 파킨슨 환자에게 위로용 멘트가 아니다. 미국 유명 칼럼니스트인 마이클 킨슬리가 자서전 『처음 늙어보는 사람들에게』에서 쓴 이야기다. 마이클 킨슬리는 42세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그는 8년을 혼자 끙끙 앓았다. 남에게 들키지 않기를 바랐고 공개적으로 밝힌 후에도 동정의 시선을 받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는 그만의 유머로 힘든 시기를 극복해냈다. 뇌 수술로 전극을 두뇌에 삽입한 후에도 그의 익살은 여전했다. "이봐, 나 이제야 머리에 철(전극)이 들었네, 하하하!"
보통 사람이 자기가 앓고 있는 난치병을 남에게 알리기는 쉽지 않다. 하물며 파킨슨병을 소재로 남을 웃길 수 있는 긍정적 사고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는 죽을 때까지 한 인간으로서 자존심을 유지할 수 있기를 원했다. 병이 내 몸을 부자연스럽게 할 수는 있지만 내 정신은, 내 자존심은, 내가 지킨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그 바탕에는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라는 명제가 깔려있다. 명성보다는 평판이 남겨진다는 신념이 그를 웃을 수 있는 파킨슨병 환자로 만들었다. 그의 유머, 긍정적 태도 때문일까. 그는 42세에 발병했지만 67세인 지금도 활발하게 글쓰기와 강연을 하고 있다. 예일대 연구에 의하면 '노인은 쓸로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퇴행성 질환 (치매) 에 더 걸린다. 뇌는 생각만으로 세로 연결이 튼튼해지고 새로운 뇌세포도 형성된다. 소위 '가소성plasticity'이론이다. 뇌는 지금보다 좋아질 수 있다. 마이클 킨슬리는 가소성 이론의 산 증인이다.
파킨슨병을 딛고 수필가로 등단한 최세환 씨(70세) 이야기가 신문에 전해졌다. 그는 글을 쓰면서 병의 공포를 이겨냈다. 과부 설움 과부가 제일 잘 안다고 했다.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해주는 한마디는 의사의 백 마디보다 강하다. 마이클 킨슬리도 글 속에서 병을 녹여낸다. 회 작가는 글쓰기가 환자 마음을 다져 잡는데 최고라 한다. 국내 파킨슨 환자협회는 환자들에게 글쓰기 강좌를 열 예정이다.
토행성 두뇌 질환은 주로 50세 이후 발생한다. 그런데 한참 나이인 30세에 파킨슨병에 걸린 사람이 있다. 영화 <백 투 더 퓨쳐>(1985) 의 주인공인 마이클 폭스다. 주저앉는 대신 그는 용기를 냈다. 언론에 병을 공개했다. 이후 파킨슨병 홍보대사로 나섰다. 치료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국회에도 약을 먹지 않은 상태로 나섰다. 떨리는 손, 떼기 힘든 발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무하마드 알리가 파킨슨병의 확실한 홍보 선구자였다면 마이클 폭스는 든든한 연구 후원자였다. 재단을 설립하고 치료제 개발 연구비를 지원했다. 재단의 연구 결과는 유명 학술지 《네이처》에도 실릴 정도였다. 그는 배우다. 그는 그가 참여한 영화에서도 파킨슨병을 알렸다. <굿 와이프Good Wife>는 작년 미국 CBS 인기 드라마로 한국 버전도 만들어졌다. 마이클 폭스는 법정에서 파킨슨병에 걸린 변호사역을 맡았다. 확실하게, 유쾌하게 병을 알렸다. 필자는 그 프로그램을 그가 55세의 실제 파킨슨병 환자임을 알고 시청했다. 진정한 배우란 어떤 사람인가를 확실히 알려준 드라마였다. 무엇이 그를 파킨슨 치료의 '굿맨Good Man'으로 만들었을까. 이 물음에 답을 준 사람이 있다. 젊은 시절, 결핵성 척추로 꼼짝 못하는 13년 고통 속에서도 계속 써 내려간 소설『빙점』의 작가 미우라 아야코 여사다. 그녀 역시 파킨슨 환자였다. 갖은 병 속에서도 그녀는 남편의 도움을 받아 글을 써 내려갔다. 그녀는 인간이 죽음을 앞둔 어려움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비싼 보석을 얻으려면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아프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성전이 있습니다. 나는 나입니다. 나는 그런 목적으로 태어났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주어야 합니다. 삶이 끝날 때까지 나만의 인생을 바쳐야 합니다.' -미우라 마야코 ▩
* 170쪽 사진 아래 적힌 글: 작가 미우라 아야코. 파킨슨병을 앓으면서도 수많은 작품을 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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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상』2017-8월호 <특별 기고>에서
* 김은기金殷基/ 서울대학교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공과대학교 박사학위 취득, 한국생물공학회장, 과학문화 창의재단 바이오 문화 사업단장 역임, 현 바이오 융합문화연구소장, 국제 SCI급 논문 130편 등과 50여 건의 특허가 있음. 저서『쓸모없는 아이디어는 없다』 『손에 잡히는 바이오 토크』『지면에서 발견한 위대한 아이디어 30』, 공저『생명과학 교과서는 살아있다』『미래를 들려주는 생명공학 이야기』『나무에서 열리는 플라스틱』등. 《중앙선데이》에 칼럼을 기고하고 경인방송 과학코너에 고정 출현하는 등, 기고와 강연을 통해 바이오 과학 기술을 대중에게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현재 인하대학교 공과대학 생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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