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가는 새의 가녀린 겨드랑이
김혜순
날아가면서 눈감아도 되나요?
날아가면서 심장에 손을 얹어봐도 되나요?
차디찬 공중에서 귀를 기울이다가
분홍색 맨발로 얼음에 내려앉는 새
척추의 매듭이 풀어지고 한 방울 한 방울
그곳에서 척수가 떨어지는 새
공연 시작 5분 전입니다. 무대 막 오릅니다.
죽은 후 떨면서 첫 무대에 오르는 새
날아가면서 그만 날기로 해도 되나요?
날아가다가 그만 툭 떨어져도 되나요?
여기는 누구의 마지막 숨이 펼친 풍경인가요?
새는 누구의 마지막 숨에서 튕겨져 나왔나요?
침묵이 가득 든 얼음 속에 웅크리고 숨었는데
누가 망치를 들고 오네요, 이름, 이름 하면서 이름
을 대라 하네요
이 삶이 나한테서 나갔어요 원피스는 벗겨지고 새
장*만 남았어요
그 방에 들어가 뺨을 맞고 엎드리기 직전 새의 얼
굴을 코앞에서 보았습니다
새 한 마리 떨면서 쇠침대에 사지가 묶입니다
꿈속에서 꿈밖으로 수북하게 쏟아지는 깃털들
발목에 이름표를 감고 고개를 옆으로 놓은 저것!
침대로 끌어올려놓고 보니 젖은 날개가 구만리인
저것!
-전문-
* 크리놀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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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피어라 돼지』에서/ 제1판 1쇄 2016.3.3.| 제1판 3쇄 2017.5.2. <(주)문학과지성사> 펴냄
* 김혜순/ 1979년 계간 『문학과지성』으로 등단, 시집『또 다른 별에서』『슬픔치약 거울크림』등, 현재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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