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날아가는 새의 가녀린 겨드랑이/ 김혜순

검지 정숙자 2017. 8. 13. 13:25

 

 

    날아가는 새의 가녀린 겨드랑이

 

    김혜순

 

 

  날아가면서 눈감아도 되나요?

  날아가면서 심장에 손을 얹어봐도 되나요?

 

  차디찬 공중에서 귀를 기울이다가

  분홍색 맨발로 얼음에 내려앉는 새

 

  척추의 매듭이 풀어지고 한 방울 한 방울

  그곳에서 척수가 떨어지는 새

 

  공연 시작 5분 전입니다. 무대 막 오릅니다.

  죽은 후 떨면서 첫 무대에 오르는 새

 

  날아가면서 그만 날기로 해도 되나요?

  날아가다가 그만 툭 떨어져도 되나요?

 

  여기는 누구의 마지막 숨이 펼친 풍경인가요?

  새는 누구의 마지막 숨에서 튕겨져 나왔나요?

 

  침묵이 가득 든 얼음 속에 웅크리고 숨었는데

  누가 망치를 들고  오네요, 이름, 이름 하면서 이름

을 대라 하네요

 

  이 삶이 나한테서 나갔어요 원피스는 벗겨지고 새

*만 남았어요

  그 방에 들어가 뺨을 맞고 엎드리기 직전 새의 얼

굴을 코앞에서 보았습니다

 

  새 한 마리 떨면서 쇠침대에 사지가 묶입니다

  꿈속에서 꿈밖으로 수북하게 쏟아지는 깃털들

 

  발목에 이름표를 감고 고개를 옆으로 놓은 저것!

  침대로 끌어올려놓고 보니 젖은 날개가 구만리인

저것!

   -전문-

 

   * 크리놀린.

 

 

   -------------

  * 시집『피어라 돼지』에서/ 제1판 1쇄 2016.3.3. 제1판 3쇄 2017.5.2. <(주)문학과지성사> 펴냄

  * 김혜순/ 1979년 계간 『문학과지성』으로 등단, 시집『또 다른 별에서』『슬픔치약 거울크림』등, 현재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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