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저지르는 비/ 신용목

검지 정숙자 2017. 8. 11. 12:47

 

 

    저지르는 비

 

    신용목

 

 

  울음 속에서 자신을 건져내기 위하여 슬픔은 눈물을 흘

려보낸다

  이렇게 깊다

  내가 저지른 바다는

 

  창밖으로 손바닥을 편다

 

  후회한다는 뜻은 아니다

  비가 와서

 

  물그림자 위로 희미하게 묻어오는 빛들을 마른 수건으

로 가만히 돌려 닦으면

 

  몸의 바닥을 바글바글 기어온 빨간 벌레들이 눈꺼풀 속

에서 눈을 파먹고 있다

 

  슬픔은 풍경의 전부를 사용한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이 시에서의 그림자는 낮과 밤의 경계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어떤 존재에 대한 증명처럼 보인다. 물그림자는 수면에 비치는 사물의 형상을 의미하는데, 그 아른거리고 흔들리는 존재는 빛이기도 하고 어둠이기도 하다. 어둠을 이기고 수면에 비치는 빛이기도 하고, 빛을 흩어놓는 어둠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림자가 반영하는 존재는 그 속에 무언가를 담고 있다고 했다. 물기에 빗대어졌던 그것은 여기서 물그림자에 담긴 물기가 되어버려서 곧장 구분이 없어진다. '나'와 비에 젖은 풍경이 경계 없이 스며들고 대상을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 무의미해지는 상황이 초래된다. (김나영金娜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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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에서/ 2017. 7. 27. <(주)창비> 펴냄

  * 신용목/ 1974년 경남 거창 출생, 2000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아무 날의 도시』등, 산문집『우리는 이렇게 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