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동박새를 먹은 동백꽃/ 배한봉

검지 정숙자 2017. 8. 3. 08:50

 

 

    동박새를 먹은 동백꽃

 

    배한봉

 

 

  바람이 세계의 입술을 얼려버리는 순간에도

  화들짝, 붉은 시간을 개화시키는

  마음 속 너를

  꺼내 저만치 밀쳐내고 내 안을 들여다본 적 있지

 

  통증은, 비명이라도 지를 수 있지만

  너 없는 자리

  시커먼 덩어리의 적막

  너무 커, 씨줄 날줄 너무 촘촘해

  숨 쉴 수 없어 나 밤새 신음도 못하고 까무러쳤지

 

  언어를 버리고 도를 깨친 선사처럼 나

  너를 버리면 시를 깨칠 수 있나

  시뻘건 꽃 모가지를

  스스로 참수한

  동백의 피 묻은 말이 적막의 허공을

  점자처럼 더듬고 있는 새벽

 

  사방 길들은 어슴어슴

  뱀처럼 꿈틀거리며 알몸 드러내는데

  아직도 나

  적막의 빈방 가로지른 관처럼 누워

  동박새 울음으로 캄캄한 목구멍 틀어막는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자연은 저 스스로 자족적으로 존재하는 순수한 생명의 표상이다. 그곳에는 인간 세계를 지배하는 무한 욕망도 없고 물질에 대한 맹신도 없다. 그곳의 생명들은 저 스스로 존재 의미를 간직하면서 상관적으로 상생하며 존재할 뿐이다. (이형권/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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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주남지의 새들』에서/ 2017. 5. 22. <(주)천년의시작> 펴냄

   * 배한봉/ 경남 함안 출생, 1988년『현대시』로 등단, 시집『黑鳥』『잠을 두드리는 물의 노래』,  산문집『우포늪, 생명과 희망의 노래』『당신과 나의 숨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