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조그만 예의/ 문성해

검지 정숙자 2017. 7. 28. 09:45

 

 

    조그만 예의

 

    문성해

 

 

  새벽에 깨어 찐 고구마를 먹으며 생각한다

 

  이 빨갛고 뾰족한 끝이 먼 어둠을 뚫고 횡단한 드릴이었

다고

  그 끝에 그만이 켤 수 있는 오 촉의 등이 있다고

  이 팍팍하고 하얀 살이

  검은 흙을 밀어내며 일군 누군가의 평생 살림이었다고

 

  이것을 캐낸 자리의 깊은 우묵함과

  뻥 뚫린 가슴과

  술렁거리며 그 자리로 흘러내릴 흙들도 생각한다

 

  그리하여

  이 대책 없이 땅만 파내려가던 붉은 옹고집을

  단숨에 불과 열로 익혀내는 건

  어쩐지 좀 너무하다고

 

  그래서 이것은

  가슴을 퍽퍽 치고 먹어야 하는 게 조그만 예의라고

 

    -------------

  * 시집『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에서/ 2016. 12. 12. <(주)문학동네> 펴냄

  * 문성해/ 1963년 경북 문경 출생, 1998년《매일신문》신춘문예와 2003년《경향신문》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자라』『입술을 건너간 이름』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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