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귀 이야기
신태희
맨 처음 바늘에 귀를 만들어준 사람을 생각해요
입이 아니라 귀를 열어준 이유를 더듬어봐요
옷 짓는 소리를 들으며, 살구꽃 지는 향기를 듣는
몰씬몰씬 익어가는 살구를 들으며, 옷 한 벌 지어내는
저 순하고 향기로운 바늘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동그란 귀 안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을까요
도토리 떨어지는 숲길에 오도카니 손을 비벼대는 다람쥐며
해와 달을 번갈아 달아매다 솔기 터진 겨울 하늘이며
이름이란 거추장스러움을 걸치기 전의 풀꽃 이야기
동심원으로 이어지는 둥글고 둥근 이야기
푸르렀을 바늘의 귓속을 들여다봅니다
가느다란 새의 다리뼈에 조심조심 구멍을 뚫는
처음부터 바늘이 아니었을 바늘에게 귀를 열어준 사람
뼈바늘에 매달린 풍경이 홈질로 지나갑니다
흐드득, 살구가 튿어집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철저하고 치열한 것만이 인간의 문명세계를 형성하고 변회시켜 온 것은 아니다. 구석기 인류의 뼈바늘의 발명은 현 문명의 꿰고, 깁는 모든 개념의 발명의 시초였다. 이 위대한 사실에 덧붙여 신태희 시인은 '입'보다 '귀'가 우선함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입이 아니라 귀를 열어준 이유"를 탐색하겠다는 포부로도 읽힌다. (고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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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분홍여우가 온다』에서/ 2016. 6. 7. <문학의전당> 펴냄
* 신태희/ 경기 김포 출생, 2013년 <제주신인문학상>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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