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Dream
유현숙
1
인도차이나 반도 남서부의 캄보디아, 거기서 한국 남자를
만났다
남자를 만나고 돌아와서 나는 앓았다
수상 가옥을 덮은 야자수 잎이 굵은 빗물을 받아내던 여러
날이 지났다
야자수 잎을 타고내린 빗방울이 강물로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날
담요를 개키고 일어났다
비 그친 강물 위로 밤은 빠르게 오고 별빛은 와르르 쏟아
져 내렸다
일어난 지 이틀만에 남자와 캄보디아식 전통혼례를 올렸다
술과 춤이 넘치는 잔치가 계속되고
멀리 있는 친척은 며칠을 묵었다
2
우리가 탑승한 비행기가 구름 사이를 뚫을 때
나는 수만 피트 상공에서 남자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남자의 나라 여의도에서는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그날 윤중로에는 쌍벚나무꽃이 만개했고 나는 행복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반짝거리는 에나멜 구두를 신고 주단 깔린 카펫을 밟을 때
내 발목에 붉은 강물 줄기가 감겼다
마흔이 넘은 신랑은 나를 돌아보고 많이 웃어 주었다
태양이 뜨거운 땅에서 온 신부, 내 이름은 싸 보파
스물셋의 꿈이 이런 것이었던가
싸구려 매니큐어를 칠한 긴 손가락과 열대우림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더빙된다
빗방울도, 강물 줄기도, 저 우림에서 발원하여 제 온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리
나는 행복하지도 슬프지도 않다
-전문-
해설> 한 문장: 막, 스물두 번째 절기 소설이 지나고 있습니다. 이제 대설과 동지만이 남았습니다. 제가 이 편지를 누나에게 보내고 나면, 아마도 우리는 대설과 동지 사이 어느 날, 낡은 촉수의 전구 아래 몇 가지 찬과 밥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아 있겠습니다. 물론 누나의 두 번째 시집도 함께 말이지요. 두 번째 시집을 내고 나서야 진짜 시인이 되는 거라고 누군가 말했던가요. 진정한 시인이 되시는 것을 다시 한 번 축하드려야겠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도 네 번째도 그리고 이 후도, 지금처럼 참 어렵고 힘들게 한 권 한 권 묶어가시기를……, 누나도, 또 저도 말입니다. 처음 만날 때 희망했던 것처럼 언제까지나 어렵게 어렵게 시 한 편을 얻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목표는 늘 그랬듯 '좋은 시 한 편'을 써내는 것이었으니 말입니다. (……) 그러고 보면 지나치게 행복했거나 지난치게 슬펐던 시절에는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는 것을 이제와서 깨닫습니다. 펄펄 물이 끓다가 다 식어가는 무렵, 해가 중천에 있기보단 어둑어둑 하루가 끝나가는 무렵, 그제서야 끓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뜨겁던 여름이 내게 무엇이었는지, 환한 대낮이 어떻게 나를 할퀴고 지나갔는지를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시보다 삶을 살아야 할 시간. 아플 만큼 아프고 불안할 만큼 불안하고 절망할 만큼 절망해야 할 시간인가 봅니다. (……) 언제나처럼 밤이면 제 기침소리가 식구들의 잠을 설치게 합니다. 기침이 심해지는 것을 보니 아마도 밤이 매우 깊었나 봅니다. 겨울인데, 이렇게 창밖에는 첫눈이 내리는데, …… (천서봉/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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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외치의 혀』에서/ 2016.1. 25. <현대시학> 펴냄
* 유현숙/ 2003년『문학선』로 등단, 시집 『서해와 동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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