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바오밥 술집/ 이운진

검지 정숙자 2017. 7. 21. 08:50

 

 

     바오밥 술집

 

    이운진

 

 

  천 년이나 살고 난 아프리카의 바오밥나무는

  텅 빈 몸 안에 술집을 열었다는데

  나는 술집이라는 말에 그 바오밥나무가 가깝고 아름답다

 

  인생보다 넓은 가슴을 열어 놓은 나무라면

  거짓의 밤이 많은 나는 그 술집에 가서

  사람에게는 할 수 없는 고해성사라도 할까 보다

 

  당신을 위해 빌려 온 행복과 빌려 온 아침, 빌려 온 글과

장미를 증인 삼아

  사랑은 나의 수의囚衣였다고 말하면 어떨까

 

  눈물과 섞인 후에야 아름다워지던 감정들

  그것들에 방패를 들어 주던 싸구려 철학들

  모든 것이 농담이었다고 한다면

  사랑의 불빛이 꺼지고 혼자만의 밤이 찾아올까

 

  마흔네 살의 여자에게 남은 모든 연민으로

  내 뒤통수를 내가 가만히 쓰다듬는 그런 밤

 

  당신의 소중한 것들을 다 팔아서

  내 하찮은 휴식의 며칠을 마련할 수 있으면

  별빛이 천장화처럼 그려진 그 술집에 가고 싶다

 

  늙은 나무에게 꽃을 물어다 주는 새의 하루처럼

  가볍고 무료하게

  하루를 잃고 또 하루를 잃으면서

  내 안에서 독약이었던 것과 이슬이었던 것도 잃으면서

 

  행방불명이라는 내 소식을 들으면 좋겠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천 년 묵은 바오밥 나무의 텅 빈 몸 안에 열려 있는 술집은, 한편으로 삶의 고통이 사라진 무덤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현재의 주거지에서 '행방불명'되어 그 술집에 숨어들고 싶다는 희구는 죽음 충동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 "늙은 나무"에서의 삶은 "가볍고 무료하게/ 내 안에서 독약이었던 것과 이슬이었던 것도 잃"는 것이라고 할 때, '바오밥 술집'을 죽음의 망각과 연관시켜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곳은 적막만 흐르는 곳이 아니다. 그곳은 '술집'인 것이다. 그래서 시인이 표명하는 행방불명에의 희구를 죽음충동에 따른 것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그 '소멸-행방불명'은 또 다른 삶에의 희구로도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시인은 그 바오밥 나무에 대해 "가깝고 아름답다"고 썼던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술집이 이 현세에 존재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곳은 "인생보다 넓은 가슴을 열어 놓은" 장소, 그러니까 인생 너머의 장소인 것이다. (이성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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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타로 카드를 그리는 밤』에서/ 2015.8.17. <(주)천년의시작> 펴냄

  * 이운진/ 경남 거창 출생, 1995년『시문학』으로 등단, 시집『모든 기억은 종이처럼 얇아졌다』, 청소년도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질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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