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성탄제/ 김종길

검지 정숙자 2017. 5. 22. 22:11

 

 

    聖誕祭

 

    金宗吉(1926~2017, 91세)

 

 

  어두운 방 안엔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山茱萸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밤이 어쩌면 聖誕祭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聖誕祭 가까운 都市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山茱萸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血液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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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黃沙現象』에서/ 1986.10.30. <民音社> 펴냄

  * 金宗吉/ 詩人이면서 영문학자인 金宗吉은

   1926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서

   1950년 고려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1952년부터 경북대학교와 청구대학을 거쳐

   30년 가까이 고려대학교 영문과교수로 있다.

  『黃沙現象』에 수록된 75편의 작품은

   1946년 「소」「門」으로부터 1986년의 「흙빛」에

   이르기까지 金宗吉 詩人이 쓰고 발표한 詩의

   거의 전부이다. 시기별로 소(1946~1948),

   聖誕祭(1951~1957), 移秧歌(1964~1969),

   河同에서(1970~1979),

   天地玄黃(1980~1986)으로 나누어 실었다.       

 

   블로그주: 맞춤법, 한자 혼용, 약력(표2) 등 1986년판 시집 원본에 따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