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신석정

검지 정숙자 2017. 6. 14. 02:27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신석정(1907~1974, 67세)

 

 

  저 재를 넘어가는 저녁해의 엷은 광선들이 섭섭해합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그리고 나의 작은 명상의 새 새끼들이

  지금도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까?

  이윽고 하늘이 능금처럼 붉어질 때

  그 새 새끼들은 어둠과 함께 돌아온다 합니다

 

  언덕에서는 우리의 어린 양들이 낡은 녹색침대에 누워서

  남은 햇볕을 즐기느라고 돌아오지 않고

  조용한 호수 위에는 인제야 저녁안개가 자욱히 나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늙은 산의 고요히 명상하는 얼굴이 멀어가지 않고

  머언 숲에서는 밤이 끌고 오는 그 검은 치맛자락이

  발길에 스치는 발자욱 소리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멀리 있는 기인 뚝을 거쳐서 들려오던 물결소리도 차츰차츰 멀어갑니다

  그것은 늦은 가을부터 우리 전원田園을 방문하는 까마귀들이

  바람을 데리고 멀리 가버린 까닭이겠습니다

  시방 어머니의 등에서는 어머니의 콧노래 섞인

  자장가를 듣고 싶어하는 애기의 잠덧이 있습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인제야 저 숲 너머 하늘에 작은 별이 하나 나오지 않았습니까?

     -전문-

 

       

   * 신석정(1907~1974): 본명 석정, 전북 부안 출생, 중앙 불교 전문강원專門講院에서 수학하고 광복 후 전주고교, 전주상고에서 교편을 잡았다. 永生大 · 전북대 등 출강, 1930년 『시문학』3호부터 동인으로 참가하면서 문단에 데뷔, 이후 김동명 시인 · 김상용 시인과 함께 3대 전원시인으로 일인자가 되었다. 시인 장만영은 석정의 동서이며, 시조시인 최승범은 사위로 석정의 가정은 시인 가족이라 말할 수 있다. 시집『촛불』(1939), 『슬픈 목가』(1947), 『빙하』(1956), 『산의 서곡』(1967), 『대바람 소리』(1970)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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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간『가온문학』2017-여름호 <가온을 여는 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