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의 접합부
- DJ Ultra의 리믹스: 유치환, 「광야에 와서」+ Aimee Mann,「Save Me」+플라톤
장석원
해체되기 위해 결합된 나는 언제나 당신을 그리워
해요, 이 그리움 앞에서 겨우 당신을 떠올리는 나는,
당신이 나를 창조하는 기쁨 당신이 나를 조직하는 기
쁨을, 잊을 수 없어요
어둠 속 물체들이 젖어들어요, 그것들이 당신이 되
는 순간, 내가 그것들을 사랑하는 순간, 당신이 배어
나와요, 모든 짐승의 눈빛이 유순해져요
그때 당신은 내 몸의 구조가 되지요, 나의 몸이 당
신의 욕망을 번역하지요
그때 하얀 장미는 침묵에 빠지고, 두려움은 내 살
이, 인내는 내 뼈가 되지요
하늘을 떼어내세요, 대지를 들어 올리세요, 뿌리를
찾았어요
나의 고독에는 열망이 없어요
다시 바람이 불면 당신과 나는 비틀거리겠지요 당신
이 발아시킨 나 맷돌로 갈아버리지요 우리의 씨앗은
하나라도 남겨서는 안 돼요 사랑의 발생은 허구예요
성난 의자와 벌어진 입술과 바늘 자국 많은 정맥,
이것은 당신 것
부푼 혈관과 붉어진 피부와 딱딱해진 눈동자, 이것
은 나의 것
나는 당신을,
무지개의 방식 접이의자의 방식 턱을 괴는 방식 고
양이가 눈을 감는 방식 채송화가 채집되는 방식
무지개가 해체되는 방식 검은 접이의자가 엉덩이를
담는 방식 턱을 괸 당신의 손등 위 정맥이 분기되는
방식 잿빛 고양이가 눈을 감고 웅크리는 방식 채송화
가 안개비 내리는 날 흙 속에 씨앗을 숨겨두고 채집
되는 방식 그리고
당신이 내게 말할 때 당신의 시선이 내 몸의 어두
운 곳으로 흘러내리는 방식
소나기구름처럼 신음하는 방식을
기억하고 있어요 당신의 시선이 닿는 모든 것
당신이 만진 모든 것에
당신이 묻어 있어요
소년의 물, 소년이라는 쇳덩어리, 비등한다 용해된다,
포옹 후 불타는 소년과 당신은 액체가 된다, 당신의 소
년 시절 육성(肉性)이 많았던 그날들 흩어지는 나날들
속으로
내가 당신을 지나갔네
오랫동안, 산맥의 냄새를, 당신의 등뼈가 품고 있
는 냄새를, 잊었군요
벗으려도 벗을 수 없는 슬픔이 많아졌어요, 당신
때문이에요
날마다 날마다 고와지는 백골이 되고 있는지도 몰
라요
오늘은 이레째 암수(暗愁)의 비 내리고, 그리움이
나의 오랜 침실을 노략하여
당신 아닌 숱한 얼굴만이 드나드는 유리문 너머가
보이지 않아요
당신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
당신이 날 구원할 수 있나요 당신이 날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누가 의심하겠어요 당신은 라듐처럼 나
를 파먹었어요
사랑받는 자는 아름답고 고상하고 완전화고, 사랑
하는 자는 더 아름다워지고 고상해지고 완전해진다
그리하여
당신은 애욕을 불태워 아들을 낳았고, 영생과 추억
과 행복을 확보했다 그리하여
나는 당신에게 굴종하였고, 나는 당신이 인간 세계
에서 없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야 잊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만약 당신이 사라지게 되면, 나는 더욱 슬퍼지리라
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나와 당신은 체조도 하였
고, 자주 레슬링도 했어요
나는 그날 밤 당신과 함께 잤습니다만, 아침에 일
어나보니, 아버지와 잔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방
에서 잔 사람은 나뿐이었습니다
독수리에게 먹히면서
바람에 난도질되면서
당신은 풍화되는 중이에요
-전문-
해설> 한 문장 : 진화란 무엇인가. 생태계의 형성 논리를 설명하기 위한 다윈의 '진화론'이 동세대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이라는 이상한 이론으로 도용된 이후, '진화'라는 단어는 생존 투쟁의 논리를 통해 구현되는 역사 발전적 세계관을 이데올로기적으로 합리화하는 비유적 레테르로 악명을 떨쳐왔다. '진화'라는 말을 들었을 때 곧바로 '발전'을 떠올리는 이유가 그 유구한 오용의 역사 때문인데, 그러나 본래 엄격한 의미에서 '진화'가 발전이라는 의미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자연은 그저 스스로 그렇게 존재할 뿐인데, 이와 관련하여 어찌 인간적 기준의 좋고 나쁨을 논할 수 있겠는가. 자연의 질서에 자유 의지가 있을 수 없듯 진화의 논리에 본래 필연적 방향성 같은 것이 개입될 여지는 없는 법이다. 같은 맥락에서 진화론은 그저 우연하게 조성된 생태계와 그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종들의 생존 메커니즘을 기능적으로 설명하는 사후적 설명법일 뿐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확하게 이해된 진화론이 인간의 역사 발전 법칙으로 비유될 때 (오늘날의 많은 사회과학 이론들이 그러하듯) 더욱 난감한 보수적 결론으로 빠질 위험이 있다. 이를테면 자연이 그러하듯 세계 역사도 아무런 목적 없이 진행되었으며, 그저 스스로의 생명을 보존하고자 하는 개체들의 자기 적응적 태도가 우연히 세계를 구성하게 되었을 뿐이라는 기능주의적 설명만이 적용될 수 있다. 존재하는 것은 다만 환경에 적응하려는 개체들의 미시적 행위이며, 그것만이 유일한 필연성이다. 세계는 이 필연성이 축적된 우연적 결과에 지나지 않으며, 이렇게 우연적으로 구성된 세계가 다시 환경처럼 인간들에게 제공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세계와 인간 사이에서 발생하는 조화는 순환적이기 때문에 그 어떤 변화의 가능성도 내장할 수 없다. 여기에는 알튀세르가 말한 역사적 클리나멘이 일어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세계가 이 모양인데, 왜 혁명이 일어날 조짐조차 없는가. 정치학자 아담 셰보르스키Adam Przeworski의 고민이 그것이었고, 그래서 그는 그 이유를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는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인간 자체에서 찾았다. 혼란과 불확실성을 두려워하는 인간이기에(노동자조차) 우선 자신의 안위가 최우선이니 굳이 기대 효용이 낮을 수 있는 혁명에 삶을 걸지 않는다. 역사의 진정한 최후는 소비에트의 몰락에서 온 것이 아니라, 모순을 잃어버린 인간들이 우세종으로 득세하는 상황, 즉 인간의 몰락에서 온 것이다. 때문에 니체도 일찍이 이와 같이 탄식했던 것이다. "슬프다! 인간이 더 이상 별을 낳지 못하는 때가 오겠구나! 슬프다! 자기 자신을 더 이상 경멸할 줄 모르는, 경멸스럽기 그지없는 인간들의 시대가 오고 있다"(『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 모나드적monadic 존재들이야말로 인간의 최종 진화형, 이른바 최후의 인간일 것이다. (강동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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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역진화의 시작』에서/ 2012.2.10. <(주)문학과지성사> 펴냄
* 장석원/ 1969년 충북 청주 출생, 고려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2002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아나키스트』, 『태양의 연대기』, 『평론집『낯선 피의 침입』『지나간 미래, 사랑의 라멘트』등, 현 광운대학교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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