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그늘
이정오
가랑비가 밤새 동네 한 바퀴를 돌고 갔다
이제 겨우 얼굴을 든 연초록 뺨을 다 씻어주고
소리 소문도 없이 다른 동네로 떠났다
동네 입구 수호신으로 서 있는
느티의 얼굴도 말끔하다
느티나무 그늘에는
동네 어른들의 회고록이 하얗게 깔리고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이 비눗방울로 날려
꼬박 밤을 새워 돈 시계바늘 공간처럼
그 자리가 뽀송뽀송했다
가랑비가 온 마을 봄 옷깃을 다 적시고 가도
느티나무 그늘은
언제나 꿈이 서리는 곳
가랑비도 안다
동네 사람들의 그 소박한 비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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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정신』2017-여름호 <신작시>에서
* 이정오/ 2010년 계간『문장』으로 등단, 시집 『달에서 여자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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