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느티나무 그늘/ 이정오

검지 정숙자 2017. 6. 19. 18:28

 

 

    느티나무 그늘

 

     이정오

 

 

  가랑비가 밤새 동네 한 바퀴를 돌고 갔다

  이제 겨우 얼굴을 든 연초록 뺨을 다 씻어주고

  소리 소문도 없이 다른 동네로 떠났다

  동네 입구 수호신으로 서 있는

  느티의 얼굴도  말끔하다

 

  느티나무 그늘에는

  동네 어른들의 회고록이 하얗게 깔리고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이 비눗방울로 날려

  꼬박 밤을 새워 돈 시계바늘 공간처럼

  그 자리가 뽀송뽀송했다

 

  가랑비가 온 마을 봄 옷깃을 다 적시고 가도

  느티나무 그늘은

  언제나 꿈이 서리는 곳

  가랑비도 안다

  동네 사람들의 그 소박한 비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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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정신』2017-여름호 <신작시>에서

   * 이정오/ 2010년 계간『문장』으로 등단, 시집 『달에서 여자 냄새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