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안지영_시인의 과학(발췌)/ 참배 : 홍지호

검지 정숙자 2017. 6. 4. 21:47

 

 

     참배

 

    홍지호

 

 

  세상의 모든 기둥이 울고 있다

 

  기둥은 감당하는 것

 

  세상은 신전이었다

 

  사람들은 계속

  신전 기둥에 쓰여 있는 말씀들을

  잘못 해석했으므로

 

  항상 기뻐하라는 문장은 또한

  잘못 해석되었으므로

 

  슬픔

  그것은 오래된 이야기

 

      *

 

  사랑이었던 것에 관해 이야기할 때

  나는 어떤 남자의 슬픈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것은 오래된 일이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는 매일 같이 옷가게를 드나들었다. 그 마네킹을 보려고,

냄새를 맡지도 만져보지도 않았다. 항상 이 자리에 있어줘서 고맙다, 너를 보면

슬픔이 슬프지 않아 라는 생각이 남자를 사로잡고 있었다. 어느날 남자가 마네

킹을 살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남자는 꼭 그 마네킹이어야 한다고 했다.

  남자가 물을 때 주인은 무서운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날 밤 마네킹의 옷을 벗

겼다. 그 마네킹은 팔고 싶지 않았으므로 미안하지만 정말 미안하지만 이라고

중얼거리면서

  다음날, 아무도 그 마네킹을 알아보지 못했다. 남자는 행복했다. 구별하는 방

법을 몰랐으므로 하나의 사랑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제 아무도 그 마네킹을 알

아보지 못하지만

  이야기 속의 누구도 슬프지 않았다.

 

      *

 

  서사에 관한 강의 시간에 선생님들이

  이야기를 지탱하는 힘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할 때마다

  아무도

 

  슬픔입니다

 

  대답하지 않았다

 

  누구도 슬퍼하지 않는 이야기의

  슬픔은 어디에서 오는가 묻는다면

 

  아마도

  전지적 작가 시점

 

      *

 

  이제 슬픔은

  이야기를 아는

  우리들의 몫이다

 

  슬픔은 감당하는 것

 

  기둥이었다

    -전문- 

 

 

     시인의 과학(발췌)_ 안지영 

  과학자들은 사물들의 말없는 행동을 번역하고 서로에게 입증하는 과정을 거쳐 객관성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럼에도 이들은 실상 사실들이 스스로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험실의 온갖 기계들은 사물들의 믿을 만한 증인으로서 과학자들이 세심하게 배치한 번역 도구들이라는 것이다. 이에 시인은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객관을 오히려 거짓이라고 생각한다. 시인의 문법에서 객관적인 사실이란 불가능한데, 그는 말이 자신을 배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체의 전유물이 되지 못하는 언어는 의미가 오염될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한다. 해서 그는 말을 가지고 씨름을 하여 마침내 탄생한 자신의 피조물로서의 시가 자신의 의중을 언제나 배반할 수 있음에 불안해한다. 그런데 '표상'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시점과 '재현'에 대한 의문이 출현하는 시점이 중첩될 때 이 두 영역의 경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홍지호는 각자 주관하는 영역이 분리되어 있을 때 그 권위를 유지할 수 있는 과학과 시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에 주목하여 시인의 과학이라는 영역을 개척해가는 중이다.(p-200)//이제 비극에 대한 오래된 이야기를 꺼내야겠다. 이 이야기는 시인과 공동체의 케케묵은 불화가 없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인은 그럴듯한 '거짓'을 재현한다는 이유로 공동체의 적으로 치부되었다. 과학적 객관성이 '진리'로 취급받는 세계에서도 시인은 신뢰하지 못할 존재라는 취급을 받는다. 홍지호는 「참배」에서 이러한 시인의 오래된 비극을 말한다. 시인은 모든 문장을 잘못 해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불완전함을 상기시키는 존재다. 시인은 자신이 사랑하는 '마네킹'과 같은 비-인간적인 것을 탐구한다. 하지만 그는 과학자가 그러하듯 자신의 탐구가 사랑에 기반한 것임을 숨기지 않는다. 시인이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흠이 아니다. 사물의 의사를 왜곡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한 슬픔을 그는 이야기로 풀어낸다. 유권자들의 견해가 주권자를 통해 오롯이 대표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과학자들이 사물의 입을 빌어 객관적 사실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들 각자에 의해 보증받아야 한다는 것, 그 모든 불확실성을 시인은 이야기로서 긍정해낸다./ 시인은 불확실함이 만들어내는 슬픔을, 슬픔으로 인해 생성되는 서사의 힘을 믿는다.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는 갱신되어야만 한다. 이야기를 갱신시키는 힘, 그것이 바로 비인칭적인 것에 대한 사랑이 아니겠는가. 차라투스트라가 그러했듯 수많은 영혼들을 거쳐 편협성을 극복하고 모든 사태들의 이면을 돌아볼 줄 아는 자는 자신의 주관으로 객관성을 더 완벽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게 그칠 줄 모르는 사물에 대한 사랑으로 시인의 과학은 지탱된다. 그러니 슬픔은 우리가 기꺼이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어찌 슬픔이 세계를 지탱하는 기둥이 아닐 수 있겠는가.(p-207,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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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로여는세상』2017-여름호 <젊은 시인 특집시리즈/신작시> 에서

  * 홍지호/ 2015년『문학동네』로 등단

  * 안지영/ 문학평론가, 2013년《문화일보》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