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을 떠나며
우대식
파울 첼란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었던가
아름다운 시절은 흩어져 여자 등에 반짝인다고
시선을 거둔다
운명이란 최종의 것
정선 강가에 밤이 오면
밤하늘에 뜨는 별
나에게 당신은 그러하다
성탄절의 새벽길
눈이 쌓이기 시작하면 기찻길 옆 제재소에서는
낮은 촉수의 등이 켜지고
이미 오래전에 예언한 미래가 사라지는 것들을 받아내고 있다
선명한 모든 것들을 배반하며
산기슭으로 흐르는 눈발 속에서
당신의 얼굴을 그리는 일은 또 언제나 부질없다
가끔 당신을 생각한다
생각하며 밥을 먹는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밥을 남긴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사랑이다
-전문, 2013년『시와표현』가을호
▶ 허무(虛無)와 사랑의 독화술사(讀話術師)/(발췌)_ 유종인
떠날 때 떠오르는 이가 있으니, 이 떠오름은 또 다른 만남에의 마중이니, 아득한 날에 만남이 품고 있는 헤어짐을 어찌 애달프게만 보랴. 그러므로 한 시절의 종언(終焉)은 단순한 종결이 아니라 영원의 핏줄에 흘려두는 마음의 피(血)려니 싶다. 언젠가 다시 내 발목을 적실 그 서늘한 데쟈뷰(deja vu) 의 물살은 정선의 낮과 밤의 별들로 돌고 돈다. "아름다운 시절은 흩어져 여자 등에 반짝인다"라고 말한 파울 첼란(Paul Celan, 1920~1970)의 고통에 찬 아름다움, 그 아리따운 고통의 인식은 이미 시인의 입술에 얹혀 피가 돌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부질없음을 넘어서는 부질없음의 여유이자 소슬한 약동이 아닐까. 궁극의 사랑은 부질없음을 향해 발걸음을 늦추지 않고 그 여분의 '밥'을 덜어주는 것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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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동네』2017-6월호 <특집> 에서
* 우대식/ 1965년 강원 원주 출생, 1999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다』『설산 국경』등, 산문집『죽은 시인들의 사회』『시에 죽고 시에 살다』등
* 유종인/ 1999년『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양철지붕을 사야겠다』『수수밭 전별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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