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줄박이 수사일지
이혜순
도로 위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
신원미상의 죽음을 놓고 햇빛들만 모여 웅성거렸다
바큇자국이 비껴간 자리
한 줄의 어둠이 고여 있었다
날개가 꺾여 있는 걸로 보아 자살로 단정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타살로 볼 수도 없었다
플라타너스에 사는 까치 부부도
그날 밤 수상한 기척을 느끼거나
어떤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하루해가 다 가도록 죽은 새를 찾는 보호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실종신고도 접수되지 않았다
바람만 뻔질나게 현장을 들락거렸다
조사 결과 곤줄박이라는 판정이 내려졌지만
어떻게, 왜 이곳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도로와 맞닿은 야산 어딘가에서
혼자 둥지를 빠져나와 길을 잃고 헤매다
실족사한 것으로 추정할 뿐이었다
죽음은 아무것도 쉽게 보여주지 않았다
-전문-
해설> 한 문장: 한편으로는 담담하게 그러나 치밀하게 '곤줄박이 새'의 사인死因을 탐색하는 시인의 손끝은 어릿하다. "어떻게, 왜 이곳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는지" "신원미상"의 죽음을 "수상한 기척"으로 의문을 제기하며 도달하는 수사는 오리무중이다. "실족사"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죽음은 아무것도 쉽게 보여주지 않"아 의아스런 사건의 결과는 사연을 알아내기에는 의뭉스러운 과정을 지닌 것이다. 특히 "곤줄박이"처럼 실종신고도 접수되지 않는 '작은 새'의 보호자를 찾는 일이란 무모할 뿐이다./ "높새바람"과 "플라타너스", "까치부부"의 증언도 "죽음"의 이유를 찾기에는 불충분하다. 도로 위의 시체는 "아무것도 쉽게" 그 알리바이를 알려주지 않는다. 이혜순 이인은 신원미상, 알리바이, 자살, 타살, 실종신고, 실족사 등의 수사적搜査的 단어를 시어로 끌어와 수사상 자주 언급되는 혐의의 세계를 존재론적 시세계로 옮겨오고 있다. (전해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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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곤줄박이 수사일지』에서/ 2017. 5. 5. <한국문연> 펴냄
* 이혜순/ 충남 서산 출생, 2010년『시안』으로 등단, 안양문인협회 · 시목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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