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
김상률
폭염 한 섬 짊어지고 수로 공사장을 간다
강물은 수장룡 등에 실려가 버렸나
물 한 방울 흔적도 없다
수도배관 수평을 잡고 물길을 열면
좔좔 물 달리는 소리
잠든 여우를 깨운다
굴삭기와 불도저는 서로 눈짓을 하며
사막의 모래를 물어뜯는다
야행을 해체당한 여우가 기어 나온다
꽁꽁 감춰두었던 꼬리를
노출시키고야 만 전갈도
전갈새끼도 줄줄이 기어 나온다
여우는 그 틈에도 두 귀를 쫑긋 세워
전갈꼬리를 물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인다
전갈은 한사코 모래 틈으로 고개를 처박는다
여우는 한사코 꼬리를 물어 전갈을 꺼낸다
난 말없이 굴삭기 시동을 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그는 한때 중동에서 일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시는 사막을 살아가는 존재들의 삶을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막의 존재들은 뜨거운 햇볕을 피해 모래 속으로 숨어든다. 모래를 뒤집어보면 수많은 생명체들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잠든 여우하며 전갈 등이 그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사막까지를 도시로 탈바꿈시키고자 한다. 카지노의 대도시 라스베가스가 그러하고 사막에 세워진 기적의 도시 두바이가 그러하다. 이 시의 화자 역시 사막을 개발하기 위해 머나 먼 타국 땅에서 일하고 있는 존재로서 수로 공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굴삭기와 불도저로 모래를 파헤치다보면 수많은 생명체들과 마주하게 된다. 문제는 자신들을 노출시킨 그 사막의 존재들이 인간들에 의해 파헤쳐지는 순간에도 본능적으로 막이활동을 한다는 사실이다. 인간들에 의해 "야행을 해체당한 여우"가 그 틈에도 "두 귀를 쫑긋 세워 전갈꼬리를 물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인다"는 사실, 그때 전갈은 또 살기 위해 "한사코 모래 틈으로 고개를 처박는다"는 사실이다. 화자는 여기서 또 삶의 깊은 이치를 발견한다. 산다는 건 저렇게 처절하고 엄숙하다는 것. 아니 엄숙해야만 하기에 화자는 "말없이 굴삭기 시동"을 끄게 된다. 이 시의 등장인물인 화자와 여우와 전갈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제목에서 상기시켜 주는 바와 같이 살고 있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이다. 살기 위해 전갈꼬리를 낚아채려는 여우나 그리고 또 살기 위해 한사코 모래 틈으로 고개를 처박으려하는 전갈은 다를 바가 없다. (오봉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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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콩중이 콩콩, 팥중이 팥팥』에서/ 2017. 4. 25. <시산맥사> 펴냄
* 김상률/ 1960년 전남 강진 출생, 2015년『문학의 오늘』로 작품활동 시작, 시인회의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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