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면
최춘희
검은 꽃잎이 물속을 떠간다
날선 의식 끝에서 부레처럼 부풀어 오르는 떠돌이 별
죽은 이들이 산 자의 입을 봉하고 호출되는 밤이다
북극해를 떠도는 유빙처럼 정처 없는 마음에
반 한 술, 순 한 잔 건네주지 못하고 길 떠났다
살을 나구고 피를 섞은 한 몸인데 손 한 번 잡아주지 못했다
후회란 늘 때늦게 오는 밤눈 같은 것
바람에 머리칼 잡혀 새가 된 영혼이 뜬눈으로
꺼이꺼이 울고 있다
전 생애를 떠메고 물속 깊이 마른 몸 잠긴다
몸을 건너가는 검은 꽃잎들 피어나 물안개 뜬다
-전문-
▶ 애잔하고 아름다운 시간(발췌)_ 유성호
화자에게 '불면不眠'은, 물 속 깊이 잠긴 '마른 몸'을 기억하면서 생겨나는 현상이다. 화자는 '검은 꽃잎"들이 떠가고 '떠돌이별'이 부풀어 오르는 한밤에, 밥과 술도 채 나누지 못하고 헤어진, "전 생애를 떠메고 물 속 깊이 마른 몸"으로 잠긴 어떤 존재를 상상하고 있다. 손 한 번 잡아주지도 못하고 헤어져 물 속 깊이 잠긴,k 그 '마른 몸'은, 화자로 하여금 밤눈처럼 찾아오는 때늦은 후회를 가져다준다. 그래서 화자는 한편에서는 "새가 된 영혼"으로 밤을 새우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몸을 건너가는 검은 꽃잎들"이 피어나 새벽 물안개로 뜨는 시간을 응시하고 있다. 이렇게 화자는 마른 몸으로 물 속 깊이 잠겨간 한 존재가 자신의 '불면'을 지속시키고 완성해가는 과정을 밀도 있는 감각으로 노래한다. 그럼으로써 이러한 어둑함이야말로 자신을 감싸고 있는 양도할 수 없는 실존적 조건임을 다시 한 번 은유적으로 보여 준다. 결국 이 작품은 화자가 겪고 있는 경험적 구체로서의 '불면'을 노래하면서, 아쉬움과 슬픔 속에서 길을 떠난 상상하고 있는 감각적 시편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시인의 어둑한 시간을 채우고 있는 가장 선명하고도 물리적인 존재는, 아마도 돌아가신 육친이 아닐까 한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회상하면서 시인은 시 안쪽에 눅눅한 울음소리들을 가득 배치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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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사』2017. 3-4월호 <시사사 초대석> 에서
* 최춘희/ 1990년『현대시』로 등단, 시집 『세상 어디선가 다이얼은 돌아가고』『시간여행자』등
* 유성호/ 문학평론가, 연세대학교 국문과 및 같은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서울신문》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지은 책 『상징의 숲을 가로질러』『움직이는 기억의 풍경들』등, 현재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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