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김윤정_영원과 문명 사이의 충돌의 돌기(발췌)/ 바라나시 저녁의례 : 이정재

검지 정숙자 2017. 5. 26. 01:48

 

 

    바라나시* 저녁의례

 

    이정재

 

 

  노래를 불러 신을 부르고

  감사와 풍요를 전달한다.

  향을 날려 악귀를 물리고

  불을 피워 태양을 가져온다.

  사천 년 전부터 불린 노래임을 갠지스의 깊이는 안다

  하루도 쉬지 않았음을 항아사 모래가 안다

  뜻이 임하였음을 오늘의 행렬이 안다.

 

  "가시오 가시오 우리의 조상이 건너갔던 그 옛길을 따라가시오

  그곳에서 제의 음료를 마시고 있는 야마*와 바루나* 두 왕을 만날 것

이요

 

  ……

 

  모든 불완전한 것들을 남겨두고 영광스런 몸을 입고 고향으로 돌

아가시오"

  리그베다 X14.7-8절

 

  계단마다 단백질로 엉킨 업장 타는 냄새

  불안한 것을 잊고 다 태우고

  새 몸의 영혼으로 고향을 향하는 조상의 행렬

  그 행렬을 이은 거지의 행렬

  더 가질 것도 바랄 것도

  더 버릴 것도 없는

  언어 이전의 자세, 언어 존재 이전의 자세

  죽음 이전의 자세로 밤을 세운

  힘에 부치는 아침은 그래도 새로워야 하듯

  몸은 몸으로 시간을 잊은 채

  잊었던 태초를 확인하려 머릿결 따라

  흘려보내는 비쉬누 물길

  생과 사의 사이를 흐른다.

    -전문-

 

  * 바라나시: 인도 갠지스강변 성지

  * 야마: 지옥을 관장하는 신, 죽음의 신

  * 바루나: 창조의 신, 우주의 신, 태양의 신

 

 

   영원과 문명 사이의 충돌의 돌기(발췌)_ 김윤정

  문명으로부터 배제된 신화의 세계는 문명에 대한 반성을 유도해내는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영원으로 향해 있는 미지의 지대이기도 하다. 문명 바깥의 신화와 세계는 거대한 의미의 더미를 이루고 있어 인간의 편협함을 견제하는 지점이 되기도 하지만 '이승' 이후 닿아 있는 '저승'의 세계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신화의 영역은 풍요와 암흑, 생명과 죽음, 과거와 미래를 모두 포함하는 세계이다. 이들 양면을 모두 내포하는 신화의 세계는 들끓는 용광로처럼 광포하다. 문명의 세계가 신화의 세계를 그토록 추방시키고자 했던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사정 속에서 과거부터 종교는 신화의 세계를 무조건적으로 배척하는 대신 그것을 다스리고 길들이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위의 시에서 등장하는 '바라나시 저녁의례'만을 보더라도 우리는 과거의 종교가 의도하였던 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갠지스강변 성지 '바라나시'에서 열리는 '바라나시 저녁의례'는 인도에서 대대로 행해져오던 장례 의식에 해당한다. 그것은 '사천 년 전부터' '하루도 쉬지 않고' 행해져 온 아주 오래된 의식이다. 그런데 이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저녁의례'는 다름 아니라 신화의 세계로 문을 활짝 열어 두고 있다. 그것은 신화의 세계 속에서 가장 풍요롭고 선한 의미들을 끌어들이고자 하고 있다. '노래를 불러 신을 부르고', '향을 날려 악귀를 물리'치는 행위는 인도의 종교가 신화의 세계를 무조건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선용善用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인도의 오랜 종교에 의해 신화의 세계는 '감사와 풍요를 전달하'는 바탕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도의 종교가 보여주는 신화적 세계와의 이 같은 관계는 신화와 각을 세우는 현대 문명과 구별되는 것이다. 현대문명이 이성과 언어로 이루어진 반면에 인도의 종교는 이성과 언어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신화의 세계에 줄기를 대고 있다. 그것은 '언어 이전의 자세, 언어 존재 이전의 자세, 죽음 이전의 자세로' '밤을 보낸' 후 '태초'의 '새로움'을 맞이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인도의 종교가 열어둔 신화의 세계는 암흑과 광포함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정화와 생명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이는 인도의 종교가 신화에 질질 끌려가는 대신 신화를 유용하게 의미화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 속에서 '바라나시 저녁의례'는 단지 형식화된 의례가 아닌, 죽은 이의 '단백질로 엉킨 업장'과 '불안한 것'을 모두 '태우고' 죽은 이를 '새 몸의 영혼으로' 인도하는 정화의 의식儀式이 되고 있다. '바라나시 저녁의례'는 신화의 지대와 갈등하거나 충돌하지 않고 화해롭게 용해된다. 그것이 "생과 사의 사이를 흐르는 물길"이 될 수 있는 것도 이와 관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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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사』2017. 3-4월호 <시사사 포커스/ 근작발표시// 작품론> 에서

  * 이정재/ 2013년『시사사』로 등단

  * 김윤정/ 문학평론가, 2007년『시현실』로 등단, 저서『한국 현대시와 구원의 담론』『불확정성의 시학』등, 강릉원주대 국문과 교수